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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Dec 17. 2020

올해 잘한 일

잘 못한 일은 수두룩 하더이다.

 정말 같은 글쓰기 모임의 멤버가 정해주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주제다. 2020년은 정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했던 일 년이었다. 이제 보름이 채 남지 않은 지금에 멈춰 돌아보면 괴로움이 가득하다. 아직도 후회되는 일과 말이 많고,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자책감은 발작처럼 나를 옥죄곤 한다. 그럴 때는 내 일상은 정신을 못 차리고 아직 기우뚱댄다. 주변의 누군가는 너무 오래 그 상태인 건 뭔가 이상하니 신경정신과 치료를 권한다. 고려중이다. 


 잘못한 일을 쓰라면 무엇을 으뜸으로 해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로 올해의 실수들은 정말 뼈저려서 내 마음에 많은 상흔을 남겼다. 그 모든 못한 것들의 유일한 순기능이라고 하면 강제로 다이어트가 되었다는 거? 외모 지상주의를 추구하지는 않고 꽤 경계하는 편이지만 계속 빠지지 않던 군살들이 정신 차려보니 증발되었다는 것은 매일 밤 거울을 보며 얻는 작은 위안이다. 


마음고생 다이어트를 잘한 일로 풀어내려는 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잘한 일 하나를 찾기 위해서 아직 쪼그라들어있는 전두엽을 풀가동해보았다. 삐그덕 거리는 연산과정의 결괏값이 하나 나왔다. 한 달 전에 문래동에 개인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것도 숙식이 가능한 곳을.


 작업실에 대한 열망은 내게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혼자 지낼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인데, 가족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난 나 이외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완전히 독립된 공간이 없었다. 생애 첫 기억부터 외할머니와 방을 같이 썼고 이 상황은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할머니가 중증치매를 십 년 가까이 앓으시면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거실에서 생활하다가 누나도 출가한 뒤에야 혼자서 쓸 수 있는 드디어 방이 생겼다. 하지만 무늬유리가 뒤덮여 있는 미닫이 문이 달려있는 공간이어서 거실의 빛과 소음이 차단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난 점점 소음과 빛에 예민하고 수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밤새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독립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혼자 생활할 어머니가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 돈도 부족했고. 이런 와중에 창작 작업을 하는 빈도수가 서서히 늘어나면서 여러 도구들과 재료들이 쌓이고, 내 방이자 작업실을 물리적으로 포화상태가 되어갔다. 작업만을 위한 전용공간의 필요도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올해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작업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 안에서 마음에 드는 공간은 없었다. 한 달 가까이 각종 부동산 어플과 사이트를 매일 들여다봤지만 헛수고였다.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가 일터에서 알게 된 사람의 인스타 계정에 작업실이 나왔다는 피드를 우연히 봤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작업실 정보가 올라오다니. 그것도 일하는 곳 근처에! 너무 궁금해서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방문을 했다. 


 일하는 생협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 문래 창작촌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개조한 공동작업실은 정말 내가 찾던 조건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온돌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큰 문제로 안 느껴졌다. 그동안 알아봤던 어떤 작업실도 주방과 샤워실이 있고 옥상과 목공작업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거기다가 무보증금이라니! 일주일 고민하고 결정하라는 대표님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그냥 다음 날에 구두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얼마 전에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 분들의 '유기사물 구조활동'에 참가했었다. 


 아직은 생각보다 시간이 안 나서 생활을 많이 못하고 있지만 점차 생활을 옮겨갈 예정이다. 며칠 지내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풀어내야 해서 난감한 면도 있고 주변에 채식 식당도 전무한 지경이라 곤란하지만 모든 것들이 해결 가능하고 완벽하다. 전기장판을 안 끄고 나와서 며칠 만에 그을린 매트리스를 발견한 내 정신상 태만 회복하면 아직은 모든 게 마음에 든다. 


 6개월이 될지 2년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작업실에 있는 동안 나 자신의 창작자로서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많은 것들을 다시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죽기 전에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없을 거란 예감이 든다. 새로 만나게 된 문래동의 창작자들도 좋은 사람들이고 이 작은 시작이 내 인생에 새로운 시대를 가져다줄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가 너무 소년만화 대사 같이 느껴져서 바로 접어놨다. 조금 더 지내보고 괜찮을 때 다시 펴볼 생각이다. 오글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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