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목포에서 열렸던 '히치하이킹 페스티벌'의 무대 감독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행사를 기획한 회사의 대표와는 이제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는데 작년에 별안간 메시지가 날아왔다. 전시를 기획 중인데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당시 나는 굉장히 심리적으로 나락에 떨어진 상태라 몸과 마음을 바쁘게 굴리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기에 단박에 수락했다. 그 뒤 코로나로 인해 한 번 전시일정이 연기가 된 뒤의 1월 중순, 미리미리 준비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뭐든 미루고야 마는 내 인생의 동반자 '우울과 나태' 콤비가 몇 개월간 등 뒤에 찰싹 붙어있었기에 다시 발등에 불 떨어진 느낌으로 전시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코로나가 존재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들'에 대한 이번 단체 전시에서 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년에 일민미술관 '새일꾼전'에 전시됐었고 지금은 수원에 위치한 선관위 연수원 상설전시장에 기증된 '동물당 메니페스토'에 등장했던 곰을 동물들의 대표로 놓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작품의 관람을 위해서는 전시물에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도록 관람자들을 유도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아두이노라고 하는 간단한 코딩을 필요로 하는 모듈에 조명을 연결한 장치인데, 적외선 센서를 사용해서 범위 내에 움직임이 감지되면 스위치가 꺼지게 만들었다. '텍스트 해독력과 눈치가 있는 관람자라면 금방 이해하겠지'라고 혼자 자위하면서 문래동 작업실로 향하는 버스에 자정이 다돼서야 올랐다.
그동안에 수차례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 활동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많이 느꼈다. 설치작업으로써 환경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하며 나무로 만들어진 종이 수십 장을 비효율적으로 소비한다. 작품을 전시장으로 옮기기 위해서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로 인해서 상당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전시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핑계로 온갖 비환경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모순 그 자체로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이 모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해보았다. 2m가 넘는 전시물을 뼈대와 외피로 분리해서 고이 접어 전체 조각들이 들어가도록 제작한 박스에 넣고 대중교통과 도보로만 운반하는 것.
전체 운반 중량은 많지 않았지만 문제는 부피였다. 내 몸통보다 큰 상자를 매고 문래에서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연희동 산수 목욕탕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3번 반복해야 하는데 혹시나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끼치지는 않을까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출발해보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큰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용달이면 30분이 걸릴 거리를 그 10배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면서 기진맥진 운반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만족감을 느끼면서 설치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정말 지구가 준 자원을 소비하면 기계를 이용해서 어마어마하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고 나니 정말 오전 내내 삭신이 쑤신다는 표현 말고는 맞는 말을 찾을 수 없는 몸상태로 보냈다. 온몸이 아직 비명을 지르는 상태이지만 곰은 다시 내 어깨에 실려서 작업실로 돌아갈 것이고, 앞으로의 나의 작품 활동들은 시간을 재화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벗어나 그 과정이 얼마나 환경적인 악영향을 덜 끼치느냐에 집중될 예정이다. 그 서사 자체도 작업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게 작가로서의 올해의 목표다. 다음에 있을 전시는 부산에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제 5월 전까지 강철 같은 체력을 길러놓아야 한다. 솔직히 지금은 좀 두렵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