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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Jan 06. 2021

바로걷기

 어릴 때부터 나는 항상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목을 조금 굽힌 상태로 걸어 다녔다. 올바른 자세가 다른 사람의 눈에 그리고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내 눈에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지를 인식한 다음부터는 의식적으로 바른 자세로 걷는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조금 힘들거나 긴장을 풀면 어릴 때의 축 쳐진 자세의 애늙은이가 다시금 튀어나오곤 한다. 이제는 애늙은이가 아니라 정말 장년을 향해 나이를 들어가고 있어서 이런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도 구부정한 자세를 발견했을 때 가끔 날아오던 외할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기에 이 정도 자세는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양옥남 여사에게 항상 감사드린다. 덕분에 사람 꼴로 산다.


 거리를 걸을 때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좀 더 확장된 느낌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면 항상 걷던 길도 완전 다른 길로 보이기도 하고 그 날의 하늘이 다른 날보다 맑고 예쁘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한다. 길을 바라보던 눈의 각도가 조금 위로 올라갔을 뿐인데도 같은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은 매번 느낄 때마다 신기하다. 


 그리고 이런 정서적인 느낌 말고도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 허벅지가 좀 굳었나? 크게 걷는 게 조금 잘 안되네', '아랫배에 힘을 좀 더 주면 허리를 더 피고 걸을 수 있구나', '엄지발가락을 조금 더 쓰면 조금 더 효율적인 느낌인데? 뛸 때도 같은 느낌일까?' 등등의 내 몸에 대해서 평소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상의 작은 기회들을 가질 수 있기에 평소 걷다가 여유가 생기면 내가 지금 어떻게 걷는지를 관찰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시험해보고 있다. 


 작년 초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조금 놀란 일이 있었다. 키가 2cm가 컸기 때문인데 이 나이에 정말 내 몸 어딘가가 자란 건 아닐 테니 아마 그동안에 바른 자세로 걸어 다니려 노력한 일이 몸 전체를 교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 뒤로 더 열심히 똑바로 걸어 다니려 노력은 했는데... 작년 내내 마음이 힘들었기에 지금은 다시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걷는다는 것은 나를 나 자신으로 유지해주는 가장 일상적이지만 중요한 요소이다. 바르게 걷고자 하는 노력들이 큰 결과를 당장 내일 가져다 주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완전히 체화하고 나면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 근거 없이 믿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걷는 것과는 다르게 어떤 생각과 마음이 바른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결국 나 자신이 정해야 한다. 그래도 이것저것 시험해 가면서 하나하나 바로 잡아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는 나의 내면 또한 점점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와 내 주변이 함께 알게 되지 않을까.


 올해가 시작한 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작년 말부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계속 여러 굵직한 갈래길에서 어디로 갈지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일주일 내내 고민하다가 당장 내일 오전까지 내려야만 하는 결정은 아직도 뭐가 더 나은 길인지 갈팡질팡하다. 똑바로 걷는 건 고사하고 가다가 무릎으로 기어갈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마음의 눈이 아직 길 끝이 아니라 발 끝에 땅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다만 결정된 길로 걷기 시작하면 바로 걸을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걷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면만 보는 것이다. 가끔 어딘가에 반사되는 내 모습을 점검은 하지만 너무 두리번거리지 않고 핸드폰 같은 걸 보면서 움직이지 않고(실제로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적이 있다). 날아가면 뒤돌아보지 않는 새처럼 똑바로 앞을 보면서 걸어갈 생각이다. 그전에 조금만 더 고민하자. 어렵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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