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과도 다름없는 문장들
# 1.
직관과 착각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과가 좋으면 직관이고 틀리면 착각인 거라면 그 둘은 결과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냥 '감'아닌가? 직관이 과거의 직·간접적인 경험의 축적으로 인한 찰나의 판단력이라면 착각은? 둘 다 나라는 같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출력되는 것들인데 평가는 너무 상반된다. 그냥 하나로 통일됐으면 좋겠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말장난이 싫다.
#2.
코로나는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면서 일어났다. 현 범지구적인 사태는 서식지를 빼앗긴 동물들의 의도하지 않은 복수극이다. 내가 인생작으로 여기고 소장 중인 일본 만화의 걸작인 기생수에서는 외계에서 인간의 강력하지만 다른 생물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의 천적이 나온다. 만화에서는 물리력으로써 대항해 나가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은 이제 코로나 19를 넘어 다가올 미지의 질병 'X'라는 천적에 어떻게 대항할까.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잔인하고 끔찍한 행위들을 멈추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축산업과 낙농업은 자본주의의 비호 속에서 이 지구를 죽음으로 물들이고 있다. 암환자가 항암치료받고 와서 점심에 발암물질을 식사로 먹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을 전 지구가 똘똘 뭉쳐서 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시스템의 한계가 이 아름다운 별을 끝장내고 있다.
#3.
동물은 그 생김새로 자기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새를 예로 들자면 부리가 길고 짧음으로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고 물갈퀴의 유무로 그 들이 물 위에서도 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인간과는 다르게 동물들은 본인들의 삶의 터전에 맞게 자신의 신체를 진화시켜왔다. 그 오랜 시간의 역사를 통해서 동물들은 자신들이 어느 환경에 사는 어떤 존재인지를 자신의 외형만으로도 함축적으로 말한다.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문학 장르인 '시'와 일맥상통한다. 동물은 지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시다. 그 시의 몸속에 쓰레기가 가득 차고 있다. 우리 몸 속도 마찬가지다.
#4.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는 너 자체로 사랑받을 존재야.'라는 말은 모두 부인하지는 않는다. 생명 자체의 소중함은 그 어떤 이유로도 부정할 수 없지만 대중 매체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말은 나처럼 꼬인 사람에게는 소수가 만든 사회 시스템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라는 말로 들릴 때가 많다. 그리고 개인의 삶에서도 본인의 인격의 성숙과 세상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없이 '지금 이대로'만 되뇌면서 나이를 먹는 것은 개인을 넘어 사회를 개변해 나가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지금 난 돈을 벌 궁리를 하고 있다.
#5.
해보고 싶은 공부, 작업, 여행 등등등이 너무 많이 쌓여있는데 이제는 몇 개는 내려놓아야 될 것 같다(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 한국인이 쓰는 이상한 겸손인 '될 것 같다'인데 이 경우는 정말 확신이 없어서 쓴다). 자기와 같은 성인 ADHD가 의심된다는 친구가 책을 빌려줘서 읽고 있는데 다행히 정신병리학적인 문제가 크게 있어서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금은 안심. 그래도 조만간 정신과 내방을 할 예정이다. 집착과 욕심이 많은 것은 아마도 유년기부터 꼬인 부분이 있어서 아닐까 나 자신을 예상해본다.
#6.
아무래도 연애를 다시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다. 마음의 급브레이크가 자꾸 걸린다. 지난 연애를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고 마음먹은 상태이지만 이따금 본능이 전신을 타고 흐를 때는 몸과 마음이 많이 괴롭다. 사마천이 되고 싶다.
#7.
'구른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외국 속담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쉼 없이 움직이고 발전하라는 말로 이해하고 잇지만 진짜 의미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이에게는 아무런 지혜가 쌓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이끼는 싱그럽고 촉촉하고 향이 좋고 예쁘다.
#8.
나는 지금 지난 몇 달에 비하면 상태가 꽤 좋은 편인데 실장님이 지나가시면서 얼굴이 왜 이리 안 좋냐고 걱정하는 말을 하셨다. 요즘 몸과 마음에 통각의 역치가 무뎌져 있어서 피로감을 못 느끼는지도. 무뎌져 가는 것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난 그냥 모서리가 깎여나가 나 자신이 마모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재미없고 뻔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곧 있을 작업 지옥 전에 좀 억지로 쉬어야 될까. 일정이 빡빡하다.
#9.
난 왜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다지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신병이 맞나 보다. 술과 담배를 줄여야겠는데 어제 작업실에 맥주 전용 냉장고가 왔다. 잘 쓰련다.
#10.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어제의 나보다 늙은 사람이 아니라 나은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은 계속 없더라도 지식과 지혜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우주의 연결 시스템과 인간 뇌의 시냅스 구조는 놀랄 만큼 닮아있다.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라는 불교 경전의 말씀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구축하고 있고 내가 할 일은 그것을 지금보다 안정되고 평화롭게 구성하고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죽기 바로 전날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저 은하계처럼.
#11.
여기까지 쓰다보니까 내 안에 To-Do-List가 항상 꽉 차있는 것은 다방면과 다각에서의 상념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ADHD가 맞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