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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Nov 04. 2020

그 남자의 결혼식

(구) 단골손님이 결혼을 했다.

"저 내년에 결혼해요. 그러기로 정했어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정한 것은 하는 사람이다. 덕범은 항상 그랬다.


이덕범은 내가 카페를 운영할 때 자주 오던 단골손님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카페를 떠나가기 전날 다행히도 덕범이 왔고 몇 년간 개인적인 대화는 나누지 않았던 터라 좀 망설였지만 이제 내가 카페에 없게 됐고 그동안 자주 와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넸다.


본인도 내가 일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몇 년 동안이나 말을 걸지 않았다던 이 단골손님과 다음에 밖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해 궁금했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이슬람 사원 근처를 걸어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인상에 남는 첫 만남(?)이었다.




3년 넘게 문화 공간 숨도의 1층 카페를 맡아 운영하면서 난 그리 싹싹한 주인장은 아니었다. 손님과의 거리를 좀 두었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친절과 배려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을 때 최대한으로 나온다. 단골손님들이 자주 시키는 메뉴를 기억하고 선택을 고민하실 때 평소 분위기나 그날의 기분들을 파악해서 추천해주는 정도가 나의 친절함의 맥시멈이었다. 케익이나 쿠키를 구웠을 때 맛 좀 보리라고 서비스로 드리는 정도? 덕범은 나의 그런 점이 퍽 마음에 들었었다고 말했다. 덕범은 항상 내가 많이 고민하고 연구해서 만든 메뉴를 기가 막히게 골라내서 주문했다. 다 맛있었다고 해줘서 기뻤다.


그 뒤로 덕범은 나에게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나는 내 주위 사람들끼리 만나게 할 때 머뭇거림이 있는데  '혹시나 서로 잘 어울리지 않거나 어느 한쪽이, 또는 양쪽 다 상대를 맘에 안 들어하면 어쩌지'하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인데 덕범은 나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인 면으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독서모임'산책(사놓았지만 안 읽고 있는 책 읽기 모임)'과 채식 다이닝 모임에 초대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긍정적이고 평범한 밝음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몇 년 동안 새로운 관계가 없던 통에 잊고 있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의 내 모습을 다시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시간이 주는 따뜻함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연락이 좀 뜸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덕범에게 안부 문자가 온다. 항상은 아니지만 놓은 확률로 내가 우울의 늪에 허리까지 빠지기 직전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는 연락이다. 몇 살이나 많아서 친구로 부르기도 그렇고 형 행세도 안 하니 형님으로 대하기도 뭐한 이 지인이 퍽이나 걱정이 되는가 보다. 나중에 알았지만 본인이 힘든 시간을 어렵게 이겨낸 경험이 있어서 내가 더 신경이 쓰이는가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분명 '그냥 궁금해서 연락한 건데요.ㅎㅎㅎ'라는 덤덤한 답변이 돌아올게 뻔하지만.   




덕범은 사람을 좋아하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지만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이 있다. 그동안에 그에게 많은 영감과 응원을 받았다. 앞으로도 덕범과 그의 형제,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낼 것 같다. 그 중심에 오랜 연애 끝에 연인과 결혼이라는 매듭을 맺은 덕범이 있다.



결혼식은 고대 근처의 전통혼례장에서 열렸다. 전통 결혼은 매우 오랜만이었지만 전날 판소리 공연을 마무리 지어서 그런지 친숙하고 웅장하게 느껴졌다. 190cm에 가까운 덕범의 풍채가 남달라서 그런지 전통혼례복이 아주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축가 대신 나온 사물놀이패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P.S : 덕범의 결혼식 덕에 오랜만에 모인 채식공감 사람들의 아이들은 못 본 사이에 훌쩍 컸다. 바닥에 떨어진 이런저런 낙엽들을 가지고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직은 세상에 생태감수성이 잊히지 않고 남아 있다 느껴져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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