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화권에는 올림포스산이 여럿 있다. 그중 튀르키예 최대 휴양 도시 안탈리아 지방에 위치한 올림포스산(튀르키예어로는 타흐탈리산Tahtali) 은 고도 2365m로 지역에선 가장 높은 산이다. 산행이어렵다면 타흐탈리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올림포스는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야생 동물과식물의 종류가 다양해 자연 애호가들과 등산객들에게 매력적인 목적지로 통하는 곳이다.
날씨가 끄물거려 오를까 말까 망설이는 걸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더라도 이왕 온 거니 올라가자고 밀어붙여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초대형이라 50~60명은 탈 수 있을 듯했다. 구름을 가르고 올라가는 중 햇살이 저 멀리 지중해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지중해에 번지는 햇살이 일렁이는 물결을 달래는 고운 손길 같았다.
마루를 등지고 마당가에 서서 아주 가끔 담배를 피우실 때 유별나게 측은해 보였던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지중해는 푸르고 고요했다. 사회과 부도 어느 한 지점으로 데려다 놓는 걸 잊지 않았던지중해. 그곳은 머리맡을 지키는 어머니의 숨결처럼차분하고 평온했다. 슬픔과 아픈 기억을 모조리 삼킨 듯 잠잠하고 평화로웠던지중해의 민낯이 그윽하게 떠오른다.
겨울이지만 산을 감싼 초록은 짙푸르렀고 위로 향할수록 하얀 설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들의 처소에 발을 디딘 듯 거룩하고 성스러웠다. 흰 눈으로 뒤덮인 올림포스 정상은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의 오븐 속세계처럼 결계지로 다가왔다. 티끌 하나 없는 새하얀 세상이라서 너저분한 마음을 갖고 가도 저절로 헹궈질 것만 같은 풍광이었다. 라오 항공 꼬리에 핀 챔파나무 꽃잎처럼 희고 또 흰 산세는 끝없이 이어져 웅혼했다. 이물 하나 용납하지 않을 신들의 은신처처럼. 하얗게 모인 산봉우리들은 지중해 물결을 머금기라도 한 듯 푸른빛으로도 눈부셨다.
신비로움과 비밀스러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조차 바람처럼 흘러가던 곳. 신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바람결에 흩날리는 눈가루를 맞으며 잡힐 듯한 구름에 손을 뻗어보았다.
신들의 고향이란 닉네임은 그리스에 빼앗겼지만 튀르키예 올림포스도결코 뒤지지 않을 경외감으로 충만했다.
산으로 들어가 부분을 볼 때와 정상에 올라 전체를 볼 때의 매력은 사뭇 다르다. 부분을 바라볼 땐 미묘한 아름다움이나 복잡성이보인다.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도 있고 독특한 암벽도 눈에 들어온다. 산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반면 전체를 볼 때의 매력은 지리적 배치와 어울리는 모습들이 장엄하게 다가온다.산맥의 모양이나 계곡의 역사, 강의 흐름 등포괄적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한없이 작아진 나는 그저 한 송이 눈의 무게가 된 것만 같다.
산 정상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산만이 가진 애정이 파고드는 순간이 있다. 거친 슬픔도 모난 시간도 다 두고 가라며 그 산만이 가진 애정으로 마음을 다독일 때가 있다. 눅눅하고 스산할 때, 향기도 훈기도 가라앉아 맨숭맨숭할 때면 산 정상의 애정을양껏들이켜고 싶어 진다. 이룰 게 많아 번잡할 때 그저 잠시만이라도 그곳에 앉아 사방 다른 기운에 기대고 싶어 진다. 태클없이 내려온 밝은 햇살에군색한 마음을 널어놓고 잠시 쉬고 싶어 진다.
깊고 섬세한 애정을 가졌지만 산은 이제 나를 부르지 않는다. 치악산이 부른다기에 닁큼 오르고 난 이후론 산이 부르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다. 두려움 없이 올라간 치악산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 후로 마음은 분명 산에 사는데 발은 땅을 딛는게 능숙해서 못 들은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 광활한 모습을 바라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거대한 자연이 마중 나와 꼭 안아줄 땐 3인용 소파를 혼자 차지한 것처럼 뻣뻣했던 긴장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높은 곳에 대한 갈망이 남다른 훈김으로 남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감정이 또렷하게 남아 산 정상을 볼 때면 풍요와 안락이 와락 덤비는 것 같아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기어코 탑승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올림포스산은 이름에서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로 신성함을 내뿜는다. 속내까지 탈탈 털어 방심하도록 진지한 카리스마로 다가온 그곳. 속살은 볼 수 없었지만 햇살과 구름이 수시로 바뀌는 중에도저 멀리 지중해와 기백에 찬 산맥이 멈춘 듯한 마음을 건드렸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