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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Nov 05. 2024

맛보다 위생

국밥과 친하지 않다. 국물과 함께 먹으면 일찌감치 포만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밥집엘 갈 때가 있다. 단체가 국밥을 할 때 아니오 할 배짱을 키우지 못해 따라간다. 같이 사는 남자와 여행 중일 때 해장국이나 순댓국좋아하 걸 알아 한 끼 정도는 국밥집엘 가자고 다.  


시월 여행에서 순천역 앞 유명하다는 국밥집엘 찾아갔다. 국밥은 경찰서 앞이 국룰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도 여태껏 가보질 못했다. 역전도 유동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실패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지 않나. 평가도 후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어 고민 없이 선택했다. 점심이 좀 지난 시간에 도착했더니 외출 중이라는 메모만 우릴 빤히 쳐다봤다. 


배도 고프고 집으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메뉴가 써억 맘에 들지 않았지만 몇 걸음 떨어진 동태탕 집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다시 밥집을 검색하여 순천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훈훈하게 마무리하려 했으나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중 동태탕이 눈에 니 따질새 없이 직진하는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국물만 있음 되는 남자인 데다 허름한 식당이 맛있다는 그의 지론을 고려해 발걸음에 토 달지 않고 문을 열었다.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한 어수선함이 먼저 시야를 채웠다. 어질러진 주방 도구들과 정리되지 않은 양념통들이 입구를 차지한 주방에서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구에 말라붙은 음식물 찌꺼기도 영 마뜩잖았지만 나가자고 말하려는 순간을 놓쳐 엉덩이를 살짝 걸친 채 식탁을 차지했다.


끼니마다 만족스러운 순천이었는데 불쑥 들어온 이 집은 그간 쌓인 만족을 깎아내렸. 그나마 벽에 적힌 후기들이 맛집임을 증명하는 듯해 잠자코 동태탕을 주문했다. 후기만큼은 아니어도 맛이 나쁘진 않았다. 몇 술 떴을 때 주인장의 설거지 방식이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더는 숟가락을 들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놓였던 비위생적인 행주로 설거지한 그릇의 물기를 닦는 모습 때문이었다. 주방부터 개수대까지 지나치게 개방적인 식당 구조가 오히려 객의 안정감을 자극해 아쉬웠다.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식사였다. 잠잠해질 만도 한데 날카로운 반응이 누그러지질 않는다. 변화는 역시나 힘든 일이다. 같이 사는 남자는 뻘뻘 흘리며 잘도 먹는다. 까탈스럽지 않은 감각부러울 따름이다.


순천은 비교적 가성비 훌륭한 음식으로 우릴 맞이한 도시였다. 한우 샤브 칼국수 집엘 들렀는데 일인 만사천 원이었다. 깔끔한 공간과 정갈한 음식도 여행객을 사로잡았다. 밑반찬으로 나온 갓피클은 직접 담근 듯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독특했다. 배추 겉절이도 시골의 맛이어서 정성으로 고객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추무침까지 밑반찬 세 접시가 가지런히 들어앉 나무박스 때문에라도 간결하면서 깔끔상차림이란 인상을 주었다. 뭣보다 무료 후식 채비 수준에 눈이 동그래졌다. 기계로 짜 먹는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원두커피를 준비해 놓았는데 아이스커피 고객을 위해 냉동고엔 얼음컵까지 진열돼 있었다.


여러 차례 실패한 경험 때문에 맛집 찾아가기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 후로 소문난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진 않는다. 각자의 입맛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맛집이 될 순 없는 노릇이다. 맛집이라고 소문나 기대하고 간 집에서 마뜩잖은 음식이 나오면 실망은 곱절이 되어 씁쓸함이 밀려온다. 같은 여행 길도 음식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식당 선택은 신중한 편이다. 맛과 더불어 쾌적한 공간까지 더해진다면 그날의 힘은 온전히 충전된 걸 느낀다. 한우 샤브 칼국수는 그런 의미에서 순천이 베푼 선한 식당이라고 할 만하다.


여행 중일 땐 현재 위치나 머물 숙소에서 가까운 곳의 대표 음식, 먹고 싶은 음식의 갈래 정도에서 검색한다. 한우 샤브 칼국수는 먹고 싶은 음식의 갈래 중 하나로 검색해 선택된 곳이다. 때로는 주변을 살피다 눈에 드는 곳으로 직진할 때도 있다. 계획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만난 적 있는데 그때는 당첨된 행운 같아 흡족했을 뿐 아니라 여행의 고단함까지 깨끗이 씻겼다.  번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곧잘 모험을 하지만 실패할 때도 다. 그럴 땐 우리의 안목이 예리하지 못했음을 탓하며 해프닝으로 여기자는데 결코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도전이다. 


순천을 여행하는 동안 먹거리만큼은 갓성비와 친절, 정성 삼박자 리듬에 흥겨웠는데 마지막 식사에서 삐끗하고 말았다. 그래도 김장철 엄마의 동태탕을 떠올리며 돌려 막기를 시도하는 바람에 소실될 뻔한 여행의 일정 부분이 복구되기는 했다. 아마도 새로 도배된 벽에 맛집이라고 댓글을 남긴 사람들은 '맛'이라는 시선으로만 음식을 마주한 객들이었을 것이다. 나에겐 오답이었을지 몰라도 그들에겐 정답이었을 동태탕 그 집. 위생에 수몰돼 맛의 가치까지 잊은 꼴이 되었지만 그들의 정답에 주눅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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