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또 다른 그녀 1 - 심심하면 대학원 가던가?
직장 생활 소고
#1~#4까지와는 다른 그녀다.
동기인데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다.
그녀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일상의 지루함을 잡다한 내기와 위트 있는 말들로
즐겁게 넘길 줄 알았다.
20대 치고는 드물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큰 아이를 낳고 몇 개월 안돼서
동기들끼리 만남을 가졌다.
나는 아기띠에 큰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타고
거의 한시간 반쯤 걸려,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랬다.
그렇다. 우리집은 시내 중심가와는 한참 떨어진 곳이다.
소위 이야기 하는 베드 타운.
동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취업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니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레오야, 아이도 어린 데, 무슨 일을 한다고 하니?"
"정 심심하면 대학원 가던가."
그 언니는 아마도 내가 받아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그리 말했을게다.
맞다. 난 받아치지 못했다.
지금의 나라면 어림도 없지.
자신을 잘 알았던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결혼을 했다.
그녀는 일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심심하면 대학원을 선택지로 고려할 수 있는,
자신의 부를,
굳이 나에게 과시하고 싶었는지,
상대방의 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막말을 날린 것이다.
- 일단, 대학원생들 미안합니다.
심심풀이로 다니는 곳이 아니란 걸 너무 잘 압니다.
그녀가 무식한 겁니다.
사람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바라는 것도 다르다.
나는 그녀가 물질적이라는 이유로
무어라 하는 게 아니다.
대화란 무릇, 일방이 아닌 쌍방인 것이다.
상대방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대화는
일방적인 폭력이고,
그날의 패배를 나는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