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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03. 2022

어른스러운 어른이 된다는 것

애도의 시간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은 지는 한참 오래고, 법적으로 음주나 흡연은 기호로 취급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알 수가 없다. 대학에 갈 때, 내 이름으로 된 세금이나 공과금을 납부할 때, 막차가 끊기는 시간을 넘어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부모님 없이 친구들끼리 여행을 갈 때 어른에 한걸음 더 다가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새치가 하나 둘 늘어나 뿌리 염색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모르는  투성이인 데다 삶에 압도되는 일이 등장하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부터 드는 걸 보면 아직 한참 멀었나 싶기도 하다.


세상에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은 없고, 내가 의도치 않아도 우발적인 일들은 벌어지므로 사고를 어떤 자세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처리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눈앞에 벌어진 일들에 회피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하는 것은 단순하고도 어렵다. 아무래도 입사한 친구보단 내가 더 침착하게 일을 처리할 테니 그럼 내가 그보다는 더 어른인 셈일까.


지난주 이태원에서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제야 사고를 어떻게 부를지, 사상자들을 어떻게 지칭할지 통합했다. 당연하게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인재였다고 지탄의 목소리도 나왔다. 안타까움에 매 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비탄에 젖은 사망자들의 저마다의 사연들은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어 자꾸만 우리를 슬픔에 동화시킨다.  


누가 잘못을 했느냐도 시끄럽다. 큰일이 벌어지면 책임의 무게를 지고 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입장표명을 한다. 아직 수습 중인 사안이니 차차 어떻게 해결되는지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사회적 보호막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소위 "나랏일 하시는 분들"의 사과도 위로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입장표명에는 화가 나다 못해 비참했다. 비바람이 부는 폭풍우 한가운데 지붕도 벽도 없이 홀로 내몰리는 기분. 징벌조차 일개미처럼 성실히 일했을 뿐인 실무자들이  진두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던 관리자들에게 휘둘리는 양상으로 흐르는 분위기도 안타깝다. 어른다워야 할 어른들이 저 살고자 다 숨어버렸다. 갓 미성년 꼬리표를 뗀 아이들을 저 멀리 남겨둔 채.


일전에 아버지가 'SBS 싱포골드'라는 합창 프로그램이 볼만하다고 소개해주셨다. 본가에 갔다가 재방송을 우연히 같이 보게 되었는데 은퇴한 어르신으로 가득한 팀이 나와서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를 불렀다. 에너지에 압도되는 다른 무대는 흥겹다고 마냥 즐겁게 쳐다보다가 그 차례에서는 나도 모르게 2절이 나오기도 전에 펑펑 울었다. 노래하시는 단원 하나하나 저마다 꽃송이가 되어 그 자신의, 혹은 우리의 삶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요 며칠 큰일이 있고 마음을 갈무리하면서 그 영상이 자꾸만 떠오른다.


슬픈 가운데 삶은 지속된다. 세월호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 우리는 꽃송이들을 또 잃었다. 최재천 선생님의 "젊음은 이런 식으로 스러져서는 안 되는데"라는 애도의 문장이 사무친다.

새삼스레 노랫말을 곱씹으며 모두의 안녕과 유명을 달리한 영혼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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