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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Sep 03. 2016

서른도 아닌 스물다섯

그런 향이 났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아마 개강 첫날이라는 이유였겠지-스틸레토 힐을 또각이며 셔틀버스가 끊긴 야심한 시각을 원망하며 오르막길을 걷고 있었다. 바람의 머릿칼이 나뭇잎에 걸려 웅웅거리다가 이내 빠져나갔다. 발이 아팠고, 기숙사까지는 여전히 까마득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기숙사 근처의 편의점에 들렀다. 바깥에는 테이블이 있었고, 우리는 각자 맥주를, 혹은 탄산수를 샀다. 나는 뭘 먹지. 와인을 발견했다. 싸구려겠지만, 그래서 먹고 싶었다. 옆에서 일행은 "그거 열 수 있겠어?" 물었고 나는 알바생을 믿었다.


알바생은 꽤나 힘들게 코르크를 땄다. 다음엔 이거 사지 말아야겠다고 웃고서는 감사인사를 전했다. 과자 몇 개와 술을 들고 짠, 우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달콤한 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향은 꽤나 좋았다. 쓴 향도 없이 그냥, 독특한 향수 같다 싶이.


한 모금을 넘겼을 때 그리고 한 모금을 더 넘겼을 때 내가 맡는 향은 조금 달라졌다. 너의 향기가 났다. 서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어린 스물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채 아무 것도 꿈꾸지 않는 스물다섯의 향이.


마지막 한 모금을 남기고서 나는 도수를 확인했다. 11도. 11도? 잠시의 당황 끝에 마지막 모금을 넘겼다. 스물하나의 텁텁한 맛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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