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여행을 참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이곳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무이림은 태안에 위치한 전 객실 독채형 호텔이다. 이미 예약이 어렵기로 소문나 있었고, 주말 예약은 더 치열했다. 몇 달을 계속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한 끝에.. 드디어 예약에 성공했다. 치열한 도전 끝에 얻게 된 결과라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집에서 태안까지는 약 2시간. 근교로 여행하기에는 적당한 위치였다.
도착한 입구에서부터 무이림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아침에 살짝 비가 내려서 하늘이 흐릿했는데, 흐린 날도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입구에 들어가면 차 1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무이림 숙소 한 곳당 정원이 2명이고, 총객실이 10개인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체크인을 하고, 방까지 안내를 받았다.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9번 방. 대나무 진입로를 지나 호텔의 가장 남쪽 절벽 끝에 있는 방이었다. 예약 당시엔 일단 비어있는 방을 정신없이 클릭했는데, 알고 보니 무이림 방 중에서 인기가 많은 방이어서 스스로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우드 톤에 군더더기 없는 곳이었다. 취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방에는 간단히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대와 커피포트가 전부였다. 서랍에 있는 식기류는 와인잔, 컵, 접시, 포크가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무이림의 매력이라고 엿볼 수 있었던 생수. 평범할 수 있는 생수에도 무이림의 이름을 새기고, 컨셉에 맞는 색을 입혔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물맛이 좋아서 리필 요청 후에 더 마셨다^^;
주방에서 바로 보이는 공간이 바로 침실이었다. 따뜻했던 조명도, 깔끔한 인테리어도 좋았지만 의외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매트리스와 이불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참 다양한 침구류를 사용하게 되는데, 썩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무이림은 '쉼'에 초점을 둔 곳이어서 그런지 침구류가 정말 좋았다. 덕분에 잠자리가 바뀌어서 불편하다던지, 잠을 푹 못 잤다던지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잘 잤다. 여행에서 잠도 정말 중요한 기억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
침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창문을 열면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만 본 것 같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그 시간 자체를 공감으로 채울 수 있는 것. 여행이 주는 소중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침실을 지나면 왼편에 화장실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세면대, 화장실, 샤워실이 모두 분리되어 있고, 샤워실과 욕탕이 연결되어 있다. 욕탕에서는 반신욕을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넓고 깊어서 오랜만에 온천에 온 기분이 들었다. 입욕제는 숙소 예약할 때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미리 신청할 수 있다. 어느 제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향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참 좋았다. 욕탕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몸을 담근 채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창문을 살짝 열면 시원한 바깥공기가 들어오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화장실 어메니티는 르몽도르(Lemondor)와 피터토마스로스(Peter thomas roth) 제품이었고, 일회용 칫솔도 사용할 수 있다.
무이림에 머물면서 가장 오랜 시간 있던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사방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바다와 숲을 한 번에 볼 수 있었다. 가운데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도세트와 테이블,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바쁘게 달려왔던 우리에게 잠시라도 쉼표를 찍고 가라는 선물을 주었던 공간이다. 이곳에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며 오롯이 쉼을 가졌다. 하루하루 채워가기 위해 사는 것 같다가도 결국엔 비워내지 않으면 채울 수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한 시간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그리고 다른 일정 없이 이곳에서만 머물게 된다면 꼭 무이림의 구석구석을 다녀보기를 추천한다. 숙소 외에도 근처 산책로, 카페, 쉼터 등이 정말 잘 마련되어 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무이림의 다양한 색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취사가 되지는 않지만 근처 식당을 추천해주기 때문에 잠시 다녀올 수도 있고, 요즘처럼 사람 많은 곳이 조심스러울 때는 미리 음식을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도 인근 횟집에서 회를 포장해 와서 당일 저녁식사를 했고, 다음 날 아침은 무이림에서 조식을 먹었다. 최근에는 조식을 룸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겨울 아침의 서리 사이로 반갑기 그지없는 소문이 들려온다.
아름다움은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걸 직감하는 게 평생 계절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고 기쁨이다.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바쁜 일상 속에서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게 어쩌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여행이 주는 메시지가 작지 않기에, 기회가 닿는다면 스스로에게 쉼을 주는 건 어떨까? 무이림에서의 하루 살기는 우리에게 돌아볼 기회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누군가에게도 이런 행복이 이곳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