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 – 귀여움 중독증
“컬렉션을 봐온 결과.. 김보경씨는 심각한 귀여움 중독입니다.”
침대 위를 지키는 인형 부대. 토이 스토리 3 에디션 폴라로이드. 자이언츠 야구 유니폼을 입은 시바견 인형, 누운 무민 인형과 선 무민 인형, 꼬마 마법사 레미 펜던트, 각종 배지... 이건 너무 커서 귀엽고, 이건 너무 작아서 귀엽고..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이 군단을 아우르는 힘은 귀여움이다. 귀여움이란 마법에는 도통 면역이 없다. 20대 분기점을 넘어서며 ‘이제 귀여운 건 졸업할 거야’하는 마음을 먹었다만... 도무지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귀여운 그림 하나 때문에 음료수병 하나 버리지 못하고, 학종이 따먹기를 할 땐 문구점에 있는 캐릭터 종류별로 가지던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소개팅에 나온 ‘구웅’을 경계하다 귀여운 개구리 티셔츠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장면. 나의 경우에는 원래도 귀여움을 향해 활짝 열린 문의 문짝을 뜯어버린 셈이지만.. 일단 귀여우면 사는 거고, 사야 할 게 있으면 이왕이면 귀여운 걸 사는 거다.
가끔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니는 예쁜 쓰레기 주면 다 좋아한다이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우리 애들이 듣고 있잖아!' 하며 황급히 귀여움즈-의 귀를 막아준다. 아직 쓰이지 못한 사람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듯, 귀여움 군단도 쓰레기가 아니다. 하나둘 모인 녀석들 머리 위에 먼지가 쌓여가도, 이들은 내게 오르골 같은 존재다. 매일 태엽을 감지는 않지만, 언제나 노래를 들려줄 준비가 된 오르골. 그래서 귀여움 앞에선 언제나 무장해제다. 그저 방 한구석에 조용히 쌓여갈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