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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걸까?”

by 김보경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이렇게 재밌게만 살아도 되나? 친구들은 기사를 따고, 쌍기사가 되고, 컴퓨터 활용 능력, 한국사 시험... 그런 자격을 하나씩 얻어 가는데 나는 한 줄로 압축할 수 없는 활동만 늘어갔다. 그동안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나눠왔는지. 어떤 배움이 있었고, 얼마나 에너지를 쏟았는지. 구구절절 얘기해보려 해도 자기소개서의 활동란 폭은 좁게만 느껴졌다. 자소서 앞에 서면 나는 아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는 듯했다. 그렇게나 뛰어다녔는데도, 후회로 뒤를 돌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 자격증 준비로 보기 어려운 동생, 인턴을 시작한다는 언니. 나는 연신 다른 길로 새고 있는 기분이었다. 휴학까지 하고 나니, 대학교 시험 기간이면 날 놀아줄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친구와 놀기도 취미 중 하나였을 뿐. 나를 잘 놀아주는 건 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나는 난타 수업, 보컬 클래스, 칵테일 만들기 체험, 연극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대학생은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졸업 후도 다르지 않았다. 영화제에서 4개월 동안 계약직 홍보팀 일을 한 뒤, 6개월 동안 다시 업무 휴면 상태에 돌입했다. 기타를 배우고, 영어 더빙 발표를 준비하며, 배구를 치고, 글쓰기 모임에 나섰다. 졸업 후에도 그렇게 왕창 길을 샜다. 일주일이 꽉 찬 일정 탓에 당시에는 거의 과로사 직전의 백수였다. 내가 좋아하는 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일주일 스케줄은 듣기만 해도 지쳐서 누워야겠어.”


영화제 스태프, 선거관리위원회 사무보조를 지나 스타트업에서 영상 작가로 일하다 계약 종료가 아닌 '첫 퇴사'를 했다. 여전히 모로 가는 이 삶에 확신은 없다. 그저 ‘자격증의 시대가 아니라 경험가들의 시대다.’라고 말하는 영상에 위안을 얻고, 피부에 닿은 시간을 믿을 뿐이다. 여전히 자격증란은 비었고, 좋아하는 활동엔 전력투구하지 않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경주마처럼 달려가 보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도 어떤가.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라는데.(거북이-빙고)


왜 매일을 이렇게 벅적하게 살아야만 했는지 고민했는데, 지금 내린 답은 그랬다. 매일을 어드벤트 켈린더처럼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어드벤트 켈린더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12월 1일부터 매일매일 상자를 열 때마다 초콜릿, 젤리가 있는 12월 달력. 그렇게 1일부터 25일까지 새로운 선물을 받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거다. 내게는 이런 활동이 열두 달의 어드벤트 켈린더였다. 매일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그 매일이 여행이니까. 한 달 전의 나 덕분에 오늘 수상자가 되었고, 지난주에 운동하며 흘린 땀 덕분에 오늘 더 단단해졌다.


이제 그 첫 번째 상자를 함께 깔 시간이다. 내가 사랑한 '야구의 세계' 함께 열어봐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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