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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기록하고

카메라

by 김보경

컬렉션 중 가장 화려하고 큰 녀석. 하지만 귀여운 키링과 스티커로 꾸며봐도 연식은 숨길 수가 없다. 세상에 뒤집힌 듯 불시에 화면이 180도를 돌아가고, 버튼이 뻑뻑해져 손톱 끝으로 버튼을 눌러야 하는 오랜 벗, DSLR 카메라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족 공용으로 산 캐논 650D. 멋모르고 샀던 내 카메라는 순전히 멋 부리기였다. 심도니, ISO 감도니, 프레임이니. 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산 카메라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늘 오토 모드였다. 그때까지는 찍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었던 거다.


줄 맞춰 늘어선 책상처럼 휴대폰도 줄지어 거두던 학창 시절. 수거 가방 따위에 뺏길 수 없는 순간마다 카메라를 챙겼다. 생일, 축제, 합창 대회, 체육대회. 셔터를 참을 수 없는 이런 이벤트에는 휴대폰을 허용해줘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친구들과 웃었던 시간을 카메라로 담다 보니, 내게 사진은 뜨거운 장면을 기록하는 방식이 됐다. 스쳐 갈 순간에 멈추는 법을 배웠고, 한 번의 셔터를 위한 인내를 길렀고, 피사체에 다가갈 용기를 키웠다.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간이 늘어갈 즈음.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으로 나섰다.


다양한 경험을 좋아하고, 누군가 이야길 나눠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전공하면서 버튼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을 찍는 사람이 되어갔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누군갈 조명하고, 말이 아닌 영상으로 얘기하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학과 수업을 듣고, 단편 영화 제작 학회에서 활동하며 한동안은 영상에 절여져 살았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는데, 대학에 오니 선수들은 장비부터 달랐다. 욕심이 났다. 그렇게 카메라 몸통보다 비싼 렌즈. 일명 ‘축복 렌즈’라고 불리는 새 눈을 달고는 단편 영화 제작 학회의 부학회장이란 이름을 달았다. 굿네이버스 미디어 봉사팀, 국제신문 시민기자, 유튜버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카메라와 친목을 쌓았다. 여행길에는 무조건 카메라 배터리부터 충전하길 일삼았다. 그 결실은 퓨처스리그 대학생 기자단이었다. 사랑해 마지않던 롯데 자이언츠. 그곳에서 1년간 선수들을 프레임에 담고, 코앞에서 야구단의 목소리를 들었다. 중요한 순간을 담았던 덕에 소중한 순간마다 카메라와 함께했다. 그렇게 10년을 동행한 카메라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돌아 다니는 동안 이리 쿵, 저리 쿵 박아댔다. 상흔이 가득한 카메라야. 네 덕에 세상을 보는 화소가 조금 더 높아졌단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꼭 수리를 맡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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