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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야빠’를 만든 갈매기들

by 김보경

초등학생 시절,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면 거실에서 하얀 메리야스 등짝이 나를 반겼다. TV에는 흥분한 캐스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얀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내내 노래를 불러대는 관중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 그리고 그런 TV를 보는 아빠. 아빠는 감독에 빙의한 듯 연신 소리 지르기와 박수 치기를 반복했다.

“투수가 쪼릿노. 공이 흔들린다! 고마 바까주라!”


이럴 때면 전후 상황을 몰라도 학원 가방을 벗어던지고 옆에 앉아 같이 소리를 질렀다.

“똑띠 든지라! 자신 있게 든지라!”


한바탕 소리를 지르던 그때의 나와 아빠는 몰랐을 것이다. 정확히 16년 후 소녀는 아버지보다도 더 아저씨-스러움이 발현된 진성 야구팬, 야구 괴물이 될 줄은. 그렇게 아빠는 나를 처음으로 야구 세계에 입문시킨 첫 갈매기였다.


띄엄띄엄 야구를 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두 번째 갈매기를 만난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 시간, 복도에는 1반부터 10반까지 늘어선 교실을 기웃거리는 선생님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조용히 1학년 7반에서 빠져나온 나는 선생님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6번째 선발투수처럼 투구 연습을 하는 우리 담임 쌤을.

“화장실은 쉬는 시간에 가야지, 요 녀석~”


평소 야자시간 같았으면 놀랄 쪽은 나였지만, 당황한 건 선생님 같았다. 선생님의 사생활을 봐버린 기분이었달까? 그럴 때면 능청스럽게 말했다.


“쉬는 시간에는 야자 출석부 드리러 가야죠~ 쌤! 폼 좋으신데요?!”


고1 부반장이었던 나는 야자에 참여하는 친구들을 체크하고, 1차 야자가 끝나고 나면 선생님께 출석부를 가지고 교무실로 갔다. 그럴 때마다 온화한 선생님의 두 얼굴을 마주했다. 한 없이 온화한 최애 선생님이 허리에 양팔을 얹고


“어이고 저 롯데 녀석들이 또... 내 참나”


하며 오후 6시 30분이면 야구 덕후 모드로 변모하는 모습을. 선생님은 내 모든 학교생활을 통틀어 ‘최애 담임쌤’이었다. 침착하고, 어른답고, 화를 잘 내지도 않으시는. 그렇게 성자 같던 선생님이 왜 야구 앞에서는 불타오를까. 그놈의 야구가 뭐길래.


아빠와 담임선생님. 두 명의 주자가 1루와 2루를 밟은 상태. 두 번의 찬스이자 위기에도 아직 야구에 입덕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좋아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때 보란 듯이 담장을 넘기고 9회 말 1, 2루에 적시 3루타를 때린 선수가 있었으니. 자이언츠를 사랑해서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유배 온 동기이자 구-남자친구다.


스무 살,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동기들과 사직 야구장에 향했다. 다시 느낀 야구장의 전율과 처음 맛본 야구장 맥주의 맛! 그렇게 몇 번이나 야구장을 찾다 보니 옆자리에서 야구를 보던 야구친구가 어느새 남자친구가 됐다. 그렇게 수업만 끝나면 야구장으로, 시험공부 중에도 야구와, 옷도 야구 잠바를 입고 다니는 지경이 됐다. 그렇게 ‘야빠’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감사한 마음과 저주당한 기분이 동시에 든다. 어쩌다 야구를 좋아하게 되어선... 물론 세 명 외에도 야구 덕후로 만든 공범은 더 있다.


- 롯데 자이언츠의 명물, 사직의 만원 관중을 쥐락펴락하는 응원 단장 ‘쪼단’

- 맥주를 먹고 있으면 어느샌가 나타나 소주를 타 주는 ‘사직 아재’

- ‘야구는 인생’이라며 가슴 떨리는 멘트를 외친 해설자와 캐스터

- 몸을 내던져 어려운 공을 잡아내며 실점을 막는 수비수.


야구장에서 시작된 야구 사랑과 야구 애증. 그렇게 야구는 나의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니, 나의 구원투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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