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혼자 남아 연습을 했던 선수예요. 이렇게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빌린 유니폼을 입고 포수 마스크를 쓴 포수.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퓨처스로 갔다.
2020년 3월 30일. 코로나의 습격으로 유난히 야구 비시즌이 길어졌다. 평소라면 정규시즌이 시작하기 전 시범경기로 설렐 시간. 하지만 유례없이 조용했다. 깊은 야구 갈증을 달래준 건 자이언츠팀의 1군과 퓨처스(2군)의 교류 경기였다. 교류 경기를 중계한다는 소식에 곧장 유튜브 생중계를 틀었다. 영상 중계 속 퓨처스팀에는 처음 보는 얼굴이 많았고, 퓨처스리그가 진행되는 상동 경기장도 낯설었다. 심지어 해설에 단장님이 중계석에 자리했다는 소식까지! 뭐 하나 익숙한 것 없는 경기였지만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렜다.
프로 1군은 자릿수가 정해져 있기에, 같은 팀이라도 1군 경기장에 아직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선수도 있었다. 자연스레 낯익은 선수가 많은 1군 팀을 응원하던 중. 한 명의 선수가 눈을 사로잡았다. 다른 선수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포수 마스크를 쓴 불펜포수, 이찬우였다.
홈을 지키면서 야구의 모든 살림을 한다는 의미로 포수는 ‘안방마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포지션이다. 오랜 시간 자이언츠는 믿고 볼 포수가 없는 ‘포수난’ 상태라고 팬들은 얘기했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의 공백을 느끼던 중, 낯선 포수를 만난 거다. 단장님의 해설은 더 놀라웠다. 그는 정식 선수가 아닌, 투수가 몸을 풀 때 공을 받는 불펜포수. 엄밀히 말하면 ‘구단 직원’이라는 거다. 심지어 그는 자기 유니폼이 없어 다른 선수의 옷을 빌려 입고 출전했단다. 그때 깨달았다. 여태 야구의 가장 빛나는 부분만 보면서 야구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을.
2020년 3월 30일 경기는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운명 같은 순간이었다. 타 구단에선 보기 드문 단장님의 해설, 노력을 인정받은 이찬우 선수의 노력, 야구를 갈망하던 나. 퓨처스리그 대학생 기자단 1기 출범, 그리고 운명처럼 우연처럼 만난 모집 공고. 한 박자라도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2군을 선수들이 부상이나 슬럼프를 극복하러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본 퓨처스리그는 1군에 오르지 못한 선수가 펼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베이스를 뺏으려는 투지, 득점을 위한 다양한 시도. 어쩌면 1군보다 가슴 뛰는 간절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퓨처스리그 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경기에 푹 빠진 어느 날, 기자단이 된 이유인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은 이찬우 선수를.
끊임없이 노력하던 그는 육성선수로 늦깎이 신인이 되었단다. 기자단으로 경기장에 다니며 운이 좋다면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선수 대 인터뷰어로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7월 14일, 처음 경기에 출전한 그를 보고는 곧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실 매주 선수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새벽 5시에 출발하고, 저녁 8시에 돌아오고, 4시간 뒤엔 기사를 마감하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찬우 선수와의 인터뷰로 초심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사심 섞인 인터뷰로 나는 그간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냈다. 퓨처스리그 기자단이 된 시발점이 이찬우 선수이며, 이렇게 마주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처음 그를 보았던 3월, 그는 늘 불펜포수의 일을 다 한 뒤에도 혼자 연습했다는 말을 들으며, 퇴근 후 회사에 남아 개인 공부를 하는 회사원을 떠올렸다. 언제 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진정성 있는 인터뷰에 흡족함을 느끼던 때, 인터뷰실을 나섰던 그가 황급히 돌아왔다.
“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한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
그간의 인터뷰를 하면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얼떨결에 녹음을 다시 시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불펜 포수 하는 형이 많이 도와줬거든요. 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운동 도와주고, 남아서도 도와줘서... 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꼭 인터뷰에 넣어주세요! 꼭이요!”
인터뷰실을 나서는 선수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난 이런 목소리를 담기 위해 이곳에 왔구나.
그렇게 9월 18일. 나는 그렇게 기사의 마지막 줄을 적었다.
<화려한 야구장 조명 뒤,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없는 곳에는 숨은 보석들이 있다. 더욱 높은 곳을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는 땀방울은 더욱 빛나 보였다. 야구에 대한 절실한 노력을 다하고, 또 노력 끝에 찾아온 기회를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이찬우와의 만남.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격려하고, 또 기회를 주었는지 그와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애정하는 구단에 깊이 맞닿아 일할 수 있었던 퓨대기. 활동이 끝난다는 점도 아쉬웠지만, 가장 슬픈 건 나의 기자단 임기가 끝나자마자 들었던 선수들의 방출 소식이었다. 인터뷰했던 5명 중 셋이나 방출된다는 소식. 특히, 이찬우 선수가 1년 만에 방출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허했다. 다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빼앗길 거란 생각에. 그렇게 퓨대기를 추억하던 2022년 5월. KBS 예능 프로그램 <청춘야구단 : 아직은 낫아웃>에서 다시 그를 발견했다. 여전히 프로 선수의 꿈을 놓지 않고 독립야구단으로 향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렇다. 우리 모두 아직은 낫아웃이고, 우린 모두 저마다의 1군을 향하는 퓨처스리그다. 여전히 도전하는 그를 응원하고, 그때의 나를 추억했다. 우리의 라운드는 끝나지 않았고, 정말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숨 쉬는 한, 우리가 베이스 위에 서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