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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은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괴물

『오셀로』 3막 4장 에밀리아의 대사

by 발자꾹

어느새 9월도 셋째 주에 접어들었다. 가을은 언제나 오려나. 한동안 시원하더니 간밤에는 습하고 무더워서 힘들었다고 한 마디씩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과 보살피는 고단함, 그래서 무얼 먹어야 좋을지 그리고 건강검진 이야기가 이어졌다. 조카 결혼식 이야기와 세븐틴 공연 소식도 곁들여졌다.


그녀 중 누군가 이제는 학교 운동회도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와 학년별로 체육관에서 진행한다는 씁쓸한 얘기를 전했다. 또 다른 그녀는 기차여행에서 옆 친구와 웃지도 못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우리네 생각과 정신은 퇴보하는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도 참아내지 못하는 각박한 세상이라니!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없다면 우리 인류의 미래는 없는데…. 그녀들은 모두 잠시 씁쓸히 웃었다.

이야기는 오늘의 책 『오셀로』로 옮겨갔다. 그녀 중 누군가가 “리어왕”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서는 깊이가 있었지만, “오셀로”는 그저 비극일 뿐이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사악한 이아고, 역겹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고, 오셀로의 의처증이 불러온 파멸에 모두 안타까워했다.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사랑을 의심하는 순간 그것이 파괴로 이어지는 과정이 더 무서웠다.


오셀로는 무어인(8세기 경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이슬람교도를 지칭. 11세기 이후 북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이슬람교도 지칭. 15세기부터 이슬람교도 지칭)이라는 이방인, 나이가 많다는 약점, 자격지심을 안고 있었다. 이아고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언변술로 상대를 흔들고, 때로는 아닌 척하며 말을 흘렸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손수건 한 장이 외도의 증거로 둔갑하고, 데스데모나의 결백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처증은 병이다”라고 누군가 말하자 실제 사례들이 쏟아졌다. 엊그제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아내를 믿지 못해 일터에서까지 전화를 켜놓아야 했던 어느 여성이 결국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주 사소한 의심에서 시작된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비극이 현실이 되는 이야기가 오갔다.

누군가는 물었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정말 목 졸라 죽인 걸까, 아니면 치명상을 입었지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데스데모나가 죽음을 택한 걸까. 의견은 갈렸지만, 결론은 같았다.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것. 이아고가 한 수 위였고, 오셀로는 끝내 진실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빛나는 인물이 있었다. 데스데모나는 가장 순수하고 당당했다. 죽는 순간에도 자신을 지키고, 남편을 원망하기보다 기도했다. 에밀리아 역시 늦게나마 진실을 드러냈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용기를 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누군가 “그놈의 정표 때문에 파국이 온 거야”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손수건 하나가 부부의 신뢰를 흔들고, 끝내 비극을 불러왔으니 말이다. 그러자 화요일의 그녀들에게도 정표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게는 아들이 정표야.” 어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또 다른 그녀가 남편이 해준 목걸이를 잃어버려서 아쉽다고 했다. 금값이 폭등한 요즘 모두가 그 아쉬움을 곱씹었다. 대부분이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같은 액세서리를 떠올렸다.

그러던 중 모두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남편이 통장에 입금할 때마다 사랑의 문구를 입력해 보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편지 통장이 세 개나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미워도 그때를 떠올리면 참고 살게 돼.” 그녀의 고백은 그녀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물개박수가 쏟아졌다.

발자꾹 그녀는 정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결혼반지였다. “그런 거 없어도 돼.”라고 태연한 척했지만 남편은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자기 반지에 박힌 작은 다이아를 빼서 그녀에게 새로운 결혼반지를 선물했다. 남편의 반지에는 큐빅을 끼워 넣었다.

그녀들은 잠시 저마다의 추억에 잠겼다. 정표는 그저 물건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잠시 오셀로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그는 추억이 아무리 소중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보다 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의 무지는 결국 사랑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파괴했다.

셰익스피어는 사랑과 질투, 신뢰와 의심, 인간의 본능과 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지금 읽어도 ‘야하다, 직설적이다’라면서 그녀들은 17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무척 궁금해했다. 또한 베네치아의 공고한 귀족 질서와 전운이 감도는 키프로스의 불안이라는 대비는, 사랑이 어떻게 이성에서 본능으로 추락하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결국 『오셀로』는 막장 드라마의 원형 같으면서도,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었다.

구수한 보리 과자와 달큰한 복숭아 향이 은은하게 남아 있는 도서관 ‘문화 아지트’. 책을 읽으며 극 중 인물을 답답하게 여겼지만, 그녀들도 현실에서 작은 일에 흔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심은 얼마나 무서운가, 의처증은 얼마나 파괴적인가.’ 일상 속 작은 사건이 불신으로 얼룩지면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그녀들의 결론은 단순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지만, 그 약함을 인정하고 신뢰를 지켜내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녀들은 오늘 또 배웠고, 한 발자국 더 나갈 수 있다.


*다음 주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마지막 시간으로 『햄릿』을 읽고 이야기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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