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이 아닌 진짜 샌프란시스코 여행
장기 여행의 어느 날은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보다 물 흐르는 데로 내 발걸음을 맞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이날이 그랬다. 내 두 발걸음으로 걷다 멈췄다 하면서 특정적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 내가 마주한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모습을 감상하는 순간 말이다.
지극히 진부하고도 움직이는 회전목마처럼 매일 같은 모습의 샌프란시스코 도시를 여행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 볼까 한다.
<청춘 일탈> 저자 Kyo H Nam
아침부터 날이 화창했다. 숙소를 나와 또 다른 하루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뭘 할까? 어디를 찾아다녀볼까? 잠에서 깨어 숙소에서 커피를 내리며 생각한 일이다.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는 날.. 여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 계획 없이 밖으로 나오는 숙소 앞에 커다란 샌프란시스코 소방차가 보인다. 큰 사이렌 소리도 없이 집들이 가득한 골목에 잠시 정차해 있는 소방차를 지나 느린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정류장은 숙소와 멀지 않은 5분 거리에 있었지만 뜬금없이 나는 정류장을 지나 계속 걸어가고 싶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 풍경을 마주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길을 걷다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개를 만났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이봐 자네! 내 사진 한방 찍어주려나?”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카리스마에 나는 수긍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러자 할아버지는 사진 확인도 안 하고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게”하며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이 할아버지는 진정한 터프가이 아닌가? 어쩜 이게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매력일 수도!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래되보이면서도 작고 귀여운 자동차? 오토바이?를 만났다. 노란색이라고 해야 하나? 연두색이라고 해야 하나? 난생처음 보는 크기와 모습의 아주 낡아 보이는 오토모빌에 카메라를 또 꺼내 든다. 찰칵…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걷는 내내 기분이 좋다. 세탁소 앞을 지나며 세탁소 안에서 빨래를 돌리면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사람의 뒷모습도 찰칵, 거리에 뜬금없이 버려져 있던 물건들을 찰칵,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걸려있는 거품을 찰칵, 가로등에 앉아있다 내가 다가가자 멀리 날아가는 까마귀의 모습도 찰칵찰칵찰칵.. 하나의 사진으로는 아무런 이야기가 되지 않지만 마치 직소 퍼즐처럼 모여서 하나의 큰 그림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엔 내가 걷는 거리 반대편의 집들을 담아볼까 한다. 센프란 시스코는 높고 낮은 언덕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경사가 제각각인 땅에 지어진 집들이 가득하다. 그 제각각인 경사의 땅처럼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다. 어느 집은 하얗고, 어느 집은 노랗고, 어느 집은 분홍빛이고, 어느 집은 하늘색이다. 창문이 많기도 하고, 창문이 적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그 다양함이 모여 계성 있는 거리의 모습을 만든다.
이제 버스를 타고 조금 멀리 가볼까 한다. 버스를 탑승하고 창문 밖으로 빠르게 스치는 거리 풍경을 담아본다. 아이를 편하게 매고 슬리퍼를 끌며 지나가는 남자에서부터 무섭게 생긴 흑형들의 모습들까지 버스 안에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마치 사파리 공원에서 집 차를 타고 탐험하듯 난 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라는 사파리를 탐험한다.
버스가 샌프란시스코 중심지에 도착하자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마 내 짐작으로는 내가 정차한 지역은 샌프란시스코 중심지에서 약간 빈민가 같은 지역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나이 든 사람들과 우중충한 느낌이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동전 소리가 나는 컵을 흔들며 나에게 눈빛을 보네는 사람들도 쉽게 마주하는 거리였다.
아무렴 어떠한가, 내가 마주하고 싶던 진짜 샌프란시스코의 모습 중 하나의 모습이기에 나에겐 새로우면서도 인상적인 감명을 준다. 내가 흐르고픈 곳으로 흘렀다면 절대 마주하지 못하는 인상적인 풍경을 도시가 흐르는 곳으로 흘러가 보니 감명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이게 진짜 여행 아닌가?
계속 걷다 보니 다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중심가였다. 내 발걸음이 멈추자 뒤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앞에서 오던 사람들이 나를 스쳐간다. 그 순간 나는 도보 옆 구석에 털석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멀리까지 확대 가능한 거대한 렌즈를 꺼내 카메라에 장착했다. 털썩 주저앉아서 지나가는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다 인상적인 장면이 보일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본다.
아이에서부터 어른, 피부색이 하연 사람부터 어두운 사람, 남자에서부터 여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내 사진의 주인공이 된다. 구체적인 그들의 이야기를 알 수 없지만 담기는 그들의 한 순간을 통해 전해지는 시대의 흐름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게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멈춰 서서 거리의 사람들을 담았다. 처음 시작은 흐름을 타고 지금은 흐름에서 잠시 삐져나와 멈춰 흘러가는 것들을 담는다. 관광자가 아닌 여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있기에 가능한 즐거움이다.
어쩌면 나는 게으름이 많은 배짱이 여행자이지 않을까?
해가 노을 지기 시작할 때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코잇 타워를 찾았다. 코잇 타워는 1933년도에 샌프란시스코 개척자인 릴리 히치콧 코잇의 유산 10만 달러를 시에 기부하며 기념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코잇 타워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타워 꼭대기층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나는 입장료를 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코잇 타워 꼭대기 층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네모난 창 밖으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보였다. 어두운 실내 분위기 때문인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감명스러워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담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한층 더 올라가자 하늘이 뻥뚤린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 사방에는 큰 창문들이 가득했고 각각의 창문들을 통해 비치는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 면은 샌프란시스코의 도시가 훤히 다 보이면서 크고 높은 건물들이 가득한 웅장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반대쪽에서는 골든게이트 다리와 바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가득한 편안한 분위기의 샌프란시스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 그 외에도 바다와, 언덕, 그리고 수많은 집들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였다.
날이 저물고 전망대가 닫을 때까지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다 내려왔다. 하루 종일 걷고 멈췄다 하면서 수천 장의 사진이 담겼다. 늦은 밤 버스에 올라타 숙소로 향하면서 오늘 담은 사진들을 작은 카메라 화면으로 돌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띤다.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고 나온 날, 형형색색의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담게 되었다. 역시 여행은 내게 생각 이상의 무언가를 선물해준다. 단지 나는 그 흐름을 타고 흘렀다 멈췄다 흘러가면 된다.
내일의 여행은 어디로 날 흘러가게 만들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