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카고 도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여행이라니..
아마 그런 날 여행을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시카고를 여행하는 도중에 하루 종일 날이 어둑해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여행은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장면들을 연출하며 나에게 한편으로 감명의 순간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던 그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청춘 일탈> 저자 Kyo H Nam
날이 우중충한 날, 시카고에서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시카고 전철을 타고 달리면서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맑은 날과는 무거운 공기의 흐름처럼 사람들의 모습 속에 무게가 실려있어 보인다. 전철을 타고 시내에 내려 시카고 현대 미술관 :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를 향하면서 조금씩 나의 마음에도 비로 인한 걱정과 무게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시카고 현대 미술관은 1967년도에 설립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미술관이지만 명성은 높은 미국 현대 미술관중 하나이다. 날이 흐려서일까? 내가 미술관을 찾았을 때 미술관 내부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어떤 미술관이든 건축적인 미가 있듯이 시카고 현대 미술관 또한 이 곳만의 독특하고 멋진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유독 좋았던 건축미는 계단이었다. 하얀 벽면과 고운 선과 날카로운 에지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면서 각 층마다 다른 시선으로 계단을 바라보고 감상할 수 있었다.
한적한 느낌으로 미술관 여러 곳곳을 방문하며 다양한 현대 미술작품들을 감상하기 시작한다. 현대 미술 작품은 리얼리즘보다는 추상적인 작품들이 즐비해 있기에 역사적인 배경이 업어도 감상하는 사람의 상상력이나 분석력에 따라 작품은 다양한 느낌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어쩜 이런 부분 때문에 내가 현대 미술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진이나 그림 또는 조각 작품들이 아닌 영상이나 빛을 이용한 작품들 또한 현대 미술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기술이 현대의 기술을 만나 미술이 된다는 것에 감탄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미래의 어떤 기술을 통해 어떤 색다르고 놀라운 작품이 채워질지도 궁금해지게 만드는 게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물론 이 점 때문에 기술은 미술이 아니라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술을 통해 미술을 완성시키고 누군가에게 감명을 전하는 것 자체가 미술인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미술이 아닌 예술일 것이다.
시카고 현대 미술관의 시설은 큰 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안을 장식하고 있는 미술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전달하기에 풍부하다. 그 풍부한 예술 작품들의 공원인 미술관을 적극적으로 여행해보길 추천한다.
미술관에서 나오자 굵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방수가 되는 기능성 겉옷과 방수 가방을 들고 있었기에 비 오는 날의 거리 여행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카메라가 비 때문에 망가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신발과 바지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점도 있었기에 추위가 느껴졌지만 과감히 나만의 여행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센 비바람이 내 머리와 어깨 위로 툭툭 떨어지며 미세한 무거움으로 나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무거워진 발걸음에 손발이 얼고 볼이 붉어지는 게 느껴진다. 나를 스치는 거리의 사람들의 손에는 다양한 색의 우산이 들려있다. 콘크리트 땅에는 빗물이 고이고 세상을 반사하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에 여행을 감행하는 순간 이색적인 장면들이 연출된다.
노란 우비를 입고 나이 든 아저씨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보였다. 멀리서 카메라를 든 나와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셔터를 눌러버린다. 순간 들키기라도 한 듯 나는 부끄럽게 카메라를 내려 든다. 그리고 찰칵… 신발을 찍는 척했다.
길을 걷다 신호등 거리에 잠시 멈춰 섰다. 우산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갈색 코트에 구두, 그리고 가죽 가방을 든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때 또 찰칵..
신호가 초록색으로 변하고 반대편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우산 아래에서 깊게 숨을 들이켜는 여자가 걸어온다. 도시의 상막함을 한 모금의 담배 연기로 대신하는 여자 같다. 그때 또 찰칵..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찰칵, 작은 보라색 우산 때문에 코트에 물이 스며들며 빠르게 걷는 여자도 찰칵, 어린아이 둘의 손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도 찰칵…
늦은 밤이 찾아올 때까지 비속에서 나는 수천 장의 이유 없는 장면들을 담았다. 이유가 없었기에 담을 수 있었다. 다양한 장면들을 내 뜻 때로 바라보며 감상하며 상상하며 나만의 이유를 찾으며 사진을 담는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진은 특정적인 이유가 있는 사진보다는 이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는 나만의 사진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나눈다.
굵은 비가 내리는 날의 시카고 도시는 중엄 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구름이 스며들고 스며드는 구름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다. 그 흐릿한 시야로 사람들이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의 빛들이 구름 사이로 피어난다. 그 관경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묘한 짜릿함이 전달된다. 당신들 살아있군요?! 하는 짜릿한 느낌이라고 할까?
오후가 늦어질수록 비는 계속됐고 하늘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차가운 공기가 사방에 가득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등 쪽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시카고가 추운 지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역시 시카고는 10월 중순에도 춥게 느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 느낌은 몸으로 전달되는 부분도 있지만 눈으로 보아도 이 장소는 춥구나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완벽하게 날이 어둑 해지고 나서 시카고 도시 중심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았다. 비 때문에 젓은 땅을 통해 거리의 빛들이 찬란하게 반사돼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중심지의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비를 통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다. 만약 내가 비가 와서 여행을 멈췄더라면 이런 이색적인 사진을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