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 Your Illusion-건즈 앤 로지스 (상)
Guns N’ Roses (상)
이미 유명했던 밴드
라디오의 위상이 지금과는 달랐던, 그래서 라디오가 새로운 음악과 세상을 향한 우리의 거의 유일하고 소중한 창(窓)이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라디오를 열심히 들으며 살아가던 어느 해, 너무나 매력적인 노래 ‘November Rain'을 한동안 자주 듣게 되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토요일코너에서 소개해 주던, 빌보드 차트에서도 꽤나 높은 순위—빌보드 Hot100 3위—에 올랐다.
'November Rain' 싱글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 Wikipedia)듣기에 따라서는, 앵앵거리는 소리로 들리는 탁한 목소리였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고, 클래식하면서도 웅장한 도입부, 약간의 요란함에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선명한 노래에, 나는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때야 비로소, 아주 뒤늦게, 나는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란 밴드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들은 그때 이미 너무나 유명한 하드록(Hard Rock) 밴드였다.
Appetite for Destruction
그들을, 그때 이미 너무나 유명한 밴드였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November Rain'이 수록된 같은 앨범—[Use Your Illusion I]—에서 ‘Don't Cry'(빌보드 Hot100 10위)가 먼저 큰 인기를 누린 탓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1987년, 그들의 데뷔 앨범 [Apptite for Destruction]의 슈퍼 히트 때문이다.
1987년 데뷔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 앨범 커버(*이미지출처 : Wikipedia)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Appetite for Destruction]은 놀라운 앨범이다.
록밴드로선 역사에 남을 판매량을 달성한 데뷔앨범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명의 신인밴드가 곡의 인기만으로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아! 록밴드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1,8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발매된 모든 앨범 중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무려 7위에 해당한다. 더불어 아티스트의 데뷔앨범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다.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보다 높은 순위인 1~6위안에는, 이글스(Eagles),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에이씨/디씨(AC/DC),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 이런 걸출한 이름들만 있다.
시야를 더 넓혀보자.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Thriller]가 부동의 1위로 자리한 바로 그 순위—(전 세계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Best-Selling Alum of All Time)—에서, [Appetite for Destruction]은 3,0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21위에 해당한다.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보다 높은 순위인 1~20위에 다른 아티스트의 데뷔앨범이 딱 한 장 있는데, 미트 로프(Meat Loaf)의 앨범이다.
미트 로프(Meat Loaf)의 1977년 데뷔앨범 [Bat Out of Hell]이, 전 세계적으로 3,400만 장이 팔려, 12위에 올라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아티스트의 데뷔앨범 1977년 미트 로프(Meat Loaf)의 [Bat Out of Hell] 앨범 커버(*이미지 출처 : Wikipedia)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가 확실히 더 인기 있었다. 전 세계적으론 미트 로프(Meat Loaf)의 [Bat Out of Hell]이 4백만 장 더 팔렸지만, 미국 내에서는, 딱 그 숫자만큼 [Appetite for Destructon]이 더 많이 팔렸다.
[Bat Out of Hell]은 미국 내 판매량 역대 22위에 해당함에도 빌보드 앨범차트 13위에 그쳤고, 수록곡에서는 빌보드 Hot100에서 Top10에 조차도, 단 한곡도 올리지 못했다.
[Bat Out of Hell]의 싱글 발매곡—발매순서 순(*괄호 안은 빌보드 Hot100 순위)
You Took the Words Right Out of My Mouth (39위)
Two Out of Three Ain't Bad (11위)
Bat Out of Hell (—)
Paradise by the Dashboard Light (39위)
All Revved Up with No Place to Go (—)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데뷔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1위도, 수록곡으로 빌보드 Hot100 1위까지도, 모두 달성했다.
[Appetite for Destruction]은 좋은 노래로 가득하다. 총 12곡이 수록된 앨범에서는 6곡이 싱글로 발매되었고, 그중 3곡이나 Top10에 올랐고, ‘Sweet Child o’ Mine’은 1위에까지 올랐다.
앨범의 싱글발매곡 (*괄호 안은 빌보드 Hot100 순위)
It’s So Easy / Mr. Brownstone (—)
Welcome to the Jungle (7위)
Sweet Child o’ Mine (1위)
Paradise City (5위)
Nightrain (93위)
이런 개별곡들의 인기가 앨범의 인기로 이어졌고, 이 앨범을 통해, 당대의 가장 대중적인 록밴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데뷔앨범에서부터 빌보드 1위 곡을 배출했는데, 그 후로 제법 긴 기간 높은 인기를 유지했음에도, ‘Sweet Child o’ Mine’이 밴드의 유일한 1위 곡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Use Your Illusion I
'November Rain'은 러닝타임이 8분 57초나 되는 긴 곡이라, 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조차도 앞과 뒤를 상당 부분 잘라낸 라디오버전을 틀어주었다. 설상가상 일부 수록곡을 우리나라에서 금지하려 한다는 것 때문에, 국내에서는 앨범 [Use Your Illusion I]이 발매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소장한 일본산 [Use Your Illusion I] CD그때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November Rain'이 수록된 [Use Your Illusion I]을 갖고픈 마음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시는 아버지께 부탁해, 두장의 CD—[Use Your Illusion I], [Use Your Illusion II]—를 갖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를 제대로 만나게 된다.
꼭 필요했던 것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었던 [Use Your Illusion I]이었으나, 이왕 아버지께 빌붙는 거, 용돈도 아낄 겸 메모지에 [Use Your Illusion I]과 [Use Your Illusion II]를 모두 적어서 드렸고, 그 덕에 나는 같은 날 두장의 CD를 모두 받아 들게 되었다.
CD를 만난 날에는, 8분 57초의 온전한 ‘November Rain’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 아버지에게서 두장의 CD를 선물 받은 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의 글 '아버지의 음악선물'에 있다.
두장의 CD 가운데 특히 [Use Your Illusioon I]을 소장하게 된 만족감은 상당히 컸다.
우선 그때까지도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앨범이라는 희소성 때문이었는데, 얼마뒤 앨범이 국내에 발매된 후에는 만족감이 더욱 커졌다. 국내 발매된 앨범에는 수록되어있어야 할 총 16곡 가운데 2곡—'Right Next Door to Hell', 'Back off Bitch'—이 금지되어, 14곡만 실린 채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제목에 각각 사용된 'Hell'과 'Bitch'—란 야만적인(?) 단어는 고귀한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감히 허용될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었다.
'Printed in Japan'인 나의 CD에는 16곡이 그대로 있었다—실은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다.
※ 뒤에 깨달은 거지만, 일본에서 구매한 두장의 CD의 케이스는 바닥면이 흰색이었는데, 이것도 꽤 독특한 것이었다. 뒤에 구매한, 또는 내가 본, 모든 CD에서는 검은색이다.
4장의 LP, 30곡을 품은 대작(大作)
LP가 음반시장의 주류였던 시절, 대부분의 앨범은 1장의 LP로 발매되었다. 간혹 하나의 앨범이 2장의 LP로 발매되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더블앨범이라 불렀다—가격도 더블이었다ㅡㅡ;;.
하나의 앨범을 2장의 LP로 발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LP 1장이 가진 용량의 한계 때문이다. LP 1장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초과용량을, 아티스트가 꼭 하나의 앨범에 모두 수록하고자 할 때, 이런 더블앨범이 필요했다.
그렇게 더블로 발매된 앨범 중에 우리가 다들 알만한 대표적인 앨범을 예로 들자면, 비틀스(The Beatles)의 [The Beatles](화이트 앨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 등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CD의 시대로 와서, 더블앨범이던 것이 CD로 재발매되었을 때는, 허탈하게도 CD 한 장에 모두 들어가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Dangerous]가 그랬다. LP로는 2장짜리였지만, 후에 1장의 CD(총 러닝타임 77분 03초)에 모두 담겼다.
나의 누적된 경험치에 따르면, 러닝타임 80분이 분기점이다. 그 이하면 CD 한 장에 모두 들어간다. (참고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은, 총 80분 42초의 러닝타임이라, 가까스로 80분을 넘겨 CD로도 더블앨범 발매되었고, CD의 시대에 나온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의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는 CD로도 더블앨범이다. 이 앨범의 총 러닝타임은 115분 44초에 달한다.)
당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소속 레이블에서는 이렇게 2장의 더블앨범(4장의 LP)을 동시에 발매하는 것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두 앨범을 시차를 두고 발매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마케팅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음반사의 의견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그들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튼 [Use Your Illusion I] & [Use Your Illusion II]가 발매될 당시는, 여전히 LP의 시대였는데, 더블앨범으로도 담을 수 없는 많은 곡을 모두 수록하기 위해, 'I'과 'II'가 필요했고, 무려 4장의 LP—CD로는 2장—로 되었다.
[Use Your Illusion I]에 16곡, [Use Your Illusion II]에 14곡, 총 30곡이 수록되었고,
두 앨범의 러닝타임은 각각 76분 09초, 75분 55초이며, 도합 총 152분 04초의 대작(大作)이 탄생했다.
두 앨범은 결국, 1991년 9월 17일 같은 날, 동시에 발매되었다.
내가 소장한 [Use Your Illusion I](좌)와 [Use Your Illusion II](우) CD두 앨범은, 잘 배분된 비슷한 러닝타임 만큼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Use Your Illusion I]을 구매한 사람은, 동시에 [Use Your Illusion II]를 같이 구매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인지, 두 앨범은 미국에서 나란히 7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했다. 두 앨범의 판매량을 합하면 1,400만 장이 되는데, 이는 미국 내 역대 앨범판매량 순위에서 20위 정도에 해당된다.
대작(大作)을 채운 대곡(大曲)
이 거대한 앨범 안에는 거대한 곡들이 있다. 헤비메탈 같은, 마니아를 위한 음악에는 러닝타임이 긴 곡들이 흔하지만, 다수 대중에게 인기 있는 뮤지션들의 음반에서는 긴 곡이 드물다. 대중들은 아무리 곡이 좋아도, 대체로 5분을 마지노선으로, 그보다 길면 지루해한다. 그래서 대중음악에는 3분대, 4분대가 가장 흔하다.
대중들의 기호가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들도 그러하다. 제작자들은 5분을 넘기는 것을 대체로 기피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같은 대중적인 밴드의 앨범이라고 하기엔, [Use Your Illusion I & II]에 담긴, 30곡에는 5분을 훌쩍 넘기는 대곡들이 아주 많다. [Use Your Illusion I]에 6곡, [Use Your Illusion II]에서 7곡, 도합 13곡이 5분이 넘는 긴 곡이다. 7분이 넘는 것도 6곡이나 된다.
13곡을 긴 곡부터 순서대로 하면 아래와 같다. (*괄호 안은 러닝타임)
1. Coma (10:13)
2. Estranged (9:23)
3. November Rain (8:57)
4. Locomotive (8:42)
5. Civil War (7:42)
6. Breakdown (7:04)
7. You Could Be Mine (5:43)
8. Get in the Ring (5:42)
9. Knockin' on Heaven's Door (5:36)
10. Bad Obsession (5:28)
11. The Garden (5:22)
12. Don't Damn Me (5:18)
13. Back off Bitch (5:03)
같은 날 발매된 앨범이지만, 쌍둥이에게도 순서가 있듯이,
[Use Your Illusion I]은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세 번째 정규앨범이고,
[Use Your Illusion II]는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네 번째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시대를 대표하던 가장 대중적인 록밴드의 전성기에 탄생한 대작(大作) 속의 음악들은, 많기만 또는 길기만 하지는 않다.
다만, 명곡(名曲)으로 가득하다.
* Use Your Illusion -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중)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