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감독과 대통령(하)
상향평준화
온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매서운 채찍아래,
언제나 실적검증에 쫓기는 '대한축구협회'와 그 산하의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이들의 엄격한 검증절차를 거치는,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뽑는 방식은,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이제 나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이후, 국내외 여러 감독이 두루 대표팀을 맡았지만, 우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에 극단적인 등락은 없다.
이를테면, 상향평준화를 이룬 모양새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는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의 축구강국들 틈에서도, 대한민국은 예전처럼 순순히 승리를 헌납하는 호락호락한 팀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이 우승후보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정도는 명백해서, 우리도 애초부터 4강이나 결승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간혹 16강은 올라간다.
가끔은 (우승후보의 발목을 잡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 딕 아드보카트(Dick Advocaat) 감독은 스위스, 프랑스, 토고와 함께 속한 G조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했고, 정말 아깝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여, 공식적으론 대회 17위—16강 탈락한 팀 중 최고 성적—로 기록되어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허정무 감독은, 축국강국 아르헨티나, 그리스, 나이지리아와 함께 B조에 속했음에도, 1승 1무 1패로, 16강에 진출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홍명보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1무 2패,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태용 감독은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모두 탈락했지만,
월드컵은 원래 어렵다.
참가국 모두가 어렵게 지역예선을 통과해서 본선에 가지만, 그중 절반은 조별리그에서 탈락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신태용 감독은 전차군단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대 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모두들 뚜렷하게 기억하다시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파울루 벤투(Paulo Bento) 감독이 우리나라를 16강으로 이끌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도자
우리나라에서 어딘가의 대표자를 뽑는데,
축구국가대표팀감독보다, 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자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 하나뿐이다.
“대통령”
전 세계에 걸쳐, 계약 가능한 모두를 후보군으로 해서, 경력과 능력을 검증해서 오직 월드컵에서 최상의 성적만을 목표로, 최선의 카드를 뽑아내는, 축구국가대표팀감독을 선정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대통령을 뽑아내는 방식은 많이 아쉽다.
첫 번째이자, 가장 큰 문제점은,
비유하자면, 국가대표축구감독을 뽑는 이들이, 후보자의 (축구에 대한) 경력과 능력을 상관 않는다는 것이다.
경력과 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아닌, 선거기간 딱 그 시기의 일시적인 인기에만 치중한다. 경력과 능력은 고사하고, 심지어 (축구에 대한) 상식 또는 지식이 전무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사실 이렇게 되는 이유에는, 양대정당이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정치판에서, 정당들이 내세우는 대통령후보의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가장 크다.
안타깝게도 어떤 정당들의 목표는, 우수한 자질을 갖춘 대통령으로, 치열한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있지 않다. 그들의 목표는 "선출되는 대통령이 우리당 후보여야 한다"는 오직 그것(집권)에만 함몰되어 있다.
그러니 유권자들에게서 표만 받으면 족할 뿐, 후보자의 머릿속 내용물이나, 지도자로서의 자질 따위는 애당초 고려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자당출신 후보자들의 지지율이 상대당 후보보다 못할 때는, 서슴없이 외부에서 후보를 영입하지만, 이때도 영입의 유일한 기준은 얼마나 인기(=당선 가능성)가 있냐일 뿐, 국정에 대한 통찰력, 리더십은 물론, (자신들의 정당과) 국가 운영 철학의 동질성, 비전의 공유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방식이면,
축구국가대대표팀감독을 뽑아도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감독을 뽑는 시기에 따라, 터무니없는 사람이 뽑힐 수 있다. 예를 들어 올림픽 직후라면, 쇼트트랙 2관왕, 양궁 3관왕, 또는 돌려차기 한방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태권도 영웅이 축구대표팀감독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일이 축구대표팀감독의 그것보다 쉽고 간단할 리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기만 있는—축구경험은 전혀 없는—누군가를 축구국가대표팀감독으로 앉히는 과감한 선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뽑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축구국가대표팀감독보다는 훨씬 더 그래야 한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대회 성적의 높낮이와는 무관하게, 대표팀감독은 항상 교체된다.
성적이 나빴다면 경질되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성적이 좋아도 (박수받으며 떠나고픈) 감독들이 거의 그만둔다. 그래서 월드컵 직후에는, 매번 자연스레 새 감독 선임절차에 돌입한다.
감독들은 분명히 계약기간이 있지만, 보장된 것은 아니다. 두 월드컵 대회 사이는 고작 4년이지만, 그 기간 대개 2~3명의 감독이 그 자리를 스쳐간다. 이유는 항상 성적부진이다. 월드컵 대회 직후에 선임된 감독이 다음 월드컵 때까지 감독이었던 것은 단 한 명—파울루 벤투—뿐이다.
2002년 거스 히딩크(Guus Hidink) 감독의 전임(前任)은, 98년의 차범근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의 전임은 박항서 감독대행이었고, 박항서의 전임은 허정무 감독이었다.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의 후임(後任)은,
포르투갈 출신 움베르투 코엘류(Humberto Coelho)였고,
네덜란드 출신 요하네스 본프레러(Johannes Bonfrère)를 거쳐,
2006년 월드컵 본선 때는 딕 아드보카트(Dick Advocaat) 감독이었다.
딕 아드보카트 후임은, 히딩크 감독시절 코치를 맡았던,
같은 네덜란드 출신 핌 베어벡(Pim Verbeek)이었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는 허정무 감독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는 홍명보 감독이었지만, 그사이엔 조광래, 최강희가 있었다.
현재 대표팀의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Jürgen Klinsmann)의 계약기간은 3년 5개월 정도이고, 2026년 월드컵 때까지로 되어 있지만, (대한민국축구대표팀이 그 대회 본선에 진출한다는 가정하에)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서도, 클린스만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현재 클린스만호의 경기력으로 봐선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성적이 부진하다고 언제든 자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대통령은 아무리 못해도, 기본적으로 임기가 보장된다. 임기중인 대통령을 퇴단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을 뽑는 한 표를 행사하러 가기까지, 우리나라 축구대표팀감독에게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졌던가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란 자리가 가진 중요성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고충을 겪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에 못지않다. 국토는 좁고, 자원은 부족하며, 오랜 식민시대를 겪었고, 분단국가이며, 극도로 사이가 나쁜 초강대국들 사이에 놓여있다—지겹도록 들어온 얘기지만, 이 사실은 변한 적이 없다.
월드컵 본선에 11회 진출하는 데엔 아시아가 대단히 유리했지만, 국제정세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굳이 축구에 비유하자면, 유럽에 위치한 것과 비슷하다—유럽은 언제나 치열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기준, 유럽에는 13장의 티켓이 주어졌는데, 우리에게 축구 강국으로 알려져 있는, 월드컵 4회 우승팀 이탈리아를 비롯, (유로 2004 우승팀) 그리스, (2002년 월드컵 3위) 티르키에, 스웨덴, 우크라이나, 체코,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등... 전통의 축구강국들이 월드컵 본선에 조차 오르지 못했다.
지정학적 위치 너머에 있는, 우리나라만의 특수성도 복잡 다양하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념의 전쟁이 여전히 살아있는 곳,
안보위협이 상존하는 곳,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무역과 외교라는 것,
언론의 보수화 정도가 극심하다는 것,
그 어느 나라보다 IT, 네트워크 발전으로 SNS가 너무나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양대포털의 뉴스장악력이 극심하다는 것 등등...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에서 지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어려울 테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그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자리여서, 고도의 자질이 요구된다.
그 옛날 어른들이 축구국가대표팀감독에 대해 했던 말처럼,
"누가 해도 똑같다"는 한가로운 소리를, 대통령에 대해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에 위치하여, 월드컵 본선에 단 한 번 진출해 본—2018년 러시아 월드컵—아이슬란드 같은 나라가, 자국의 축구대표팀감독을 뽑는 심정으로,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축구보다 중요한 일상
우리 국민 대부분은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라면, 새벽잠까지 설쳐가며 챙겨보고, 결과에 따라 냉정하게 칭찬과 비판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국가대표팀의 축구에 쏟는 관심과, 그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의 현재나 미래에, 어떠한 것도 더해주지도 빼주지도 못하며, 우리 생계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축구는 취미정도에 불과한 것이고, 복잡한 우리 일상의 그저 한 귀퉁이에 불과하다.
나 또한 누구보다 축구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 대표팀의 성적에 울고 웃지만, 그것이 나의 일상과 삶에 주는 효능감은 사실 크지 않다. 약간 있지만, 너무나 지엽적이고 협소하다.
다시 말하자면,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16강에 올라갔다고 해서, 또는 못 갔다고 해서 그때 잠시 울고 웃을 뿐, 우리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했다고 해서, 그 이후 아르헨티나 국민 개개인의 실생활이 개선되었을 리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 여부 보다,
누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느냐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크다.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은 경제학자 출신이며, 극우성향인 하비에르 밀레이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의 결정은 무수하게 많다.
소득, 세금, 교육, 생활환경, 의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
계속되는 경제난에 지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작년 12월 10일에 임기를 시작한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 그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지켜볼 일이다.
감별력(鑑別力)
끝으로 우수한 지도자를 감별하는 능력이다.
대한축구협회의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여기에 속한 위원들은 나름의 충분한 식견, 안목, 자격을 갖추었을 테지만, 이들이 대표팀감독을 뽑을 때의 마음 가짐은 어떠할까를 한번 생각해 보자.
당연한 얘기지만, 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하면 국민들의 질타는 감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감독 한 사람의 차원을 넘어, "저런 감독을 누가 뽑았냐?" 하는, 다음 질문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위원이라면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화살을 두려워해서라도, 후보자의 경력과 능력을 꼼꼼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후보자의 능력을 대표팀에 녹여내어, 좋은 성적을 뽑아내는 데 있다.
대통령을 뽑는 우리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인 우리나라에서, 유권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위원과 다름 아니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하는 위원이 맞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나는 대통령의 자질을 파악할 능력이 있는가?”
유권자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면, 공부해야 한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팀을, 내가 뽑은 축구대표팀감독이 아시아 지역예선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축구대표팀 감독을 잘못 뽑은 것이고, 평가위원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후보자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유권자들에게도 똑같이 한 표가 주어지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가 가진 커다란 허점이다.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 선수선발, 선발명단, 교체타이밍, 포메이션, 전략과 전술 등에 대한 국민들의 감시와 비판이, 대표팀을 지금의 수준으로 견인한 것처럼, 임기중인 지도자에 대해서도 그의 결정에 의한 인사, 외교, 국방, 세제, 재정, 노동, 의료, 교육 등에 대해, 그를 직접 뽑은 위원으로서, 국민들의 감시와 비판은 항상 필요하다
선발 과정에 직접 관여도 하지 않은, 축구국가대표팀감독에게 우리가 행하는,
그 정도의 감시와 비판 정도면, 충분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지금은 21세기지만, 대통령을 왕(王)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것이 놀랍다. 대통령은 구중궁궐에 들어앉은 조선시대 왕이 아니다.
나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또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경제는 갑자기 왜 이런 것인지,
성장률은 갑자기 왜 이런 것인지,
무역수지는 갑자기 왜 이런지,
계속되는 재정적자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
감세는 왜 계속 이런 방향으로만 가는 것인지,
어떤 예산은 왜 턱없이 삭감한 것인지,
대미, 대일, 대중, 대러 외교는 이전 정부들과 왜 이렇게 다른지,
한반도엔 왜 긴장이 고조되는지,
지구온난화와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은 왜 퇴보하는지...
끝도 없이 궁금하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그를 만날 길이 없으니 묻지 못한다. 나를 대신해 기자들이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클린스만에게는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이, 대통령에겐 왜 궁금한 것이 없는 것인가?
기자들이 1998년 월드컵 때, 대회기간 중이던 현직 국가대표감독을 프랑스 현지에서 경질시켰던, 그때의 기세로 대통령에게도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그 정도까지는 못한다면, 2023년 6월 (만만한) 클린스만 감독에게, 국민을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질문했던 그때처럼만이라도, 기자들이 언제든 질문하고, 계속 또 질문했으면 좋겠다.
“대통령께서는 정확하게 추구하는 국정 색깔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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