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업에서의 권력이동 #1
“20세기에 열심히 음악을 들었다. 21세기에도 음악을 듣고 있지만, 같은 일이 너무 달라졌다.
무엇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해졌다.
성실하고 꾸준한 오직 소비자의 관점에서 지나온 짧은 역사를 100% 주관적으로 고찰해 본다.”
한때 음반을 아주 많이 구입하는 사람이었다. 음반을 한 장 한 장 구입하는 일, 레코드샵을 방문하는 일, 이런 것은 어쩌면 음악을 만나는 과정일 뿐이지만, 우리가 너무나 아끼던 일상이다. 설렘과 기쁨의 소확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애타게 기다려온 아티스트의 신보를, 명반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 또 한 장 한 장 늘어가는 음반의 숫자에 흐뭇해하며, 열심히도 사모았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또 전 세계에 얼마나 많았겠는가.
음악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음반을 수집하는 단계로 가면 그것은 그리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LP 한장은 5~6천 원, CD 한장은 1만 원을 훌쩍 넘었다.
음반 시장이 건재하던 시기, 그것은 늘 생산자(음반 제작자, 때로는 아티스트까지)가 우위를 점한 시장이었다. 시장에서 모든 결정권은 생산자에게 있었고, 대체로 적극적인 음반 소비자들은 생산자가 정하는 대로(상품의 형태, 가격 등)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됐다. 지금 와서 그때를 되돌아보니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내가 카세트테이프 세상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카세트테이프가 가장 오래된 매체는 아니지만, 내가 본 세상은 언제나 카세트테이프가 대세였다. 카세트테이프 만이 가진 특장점이 2가지가 있다. 동일한 콘텐츠를 수록한 제품 중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 그리고 휴대성이다. 덕분에 LP와 CD가 늘 공존했지만 아마도 판매량은 비교할 수 없이 카세트테이프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음반으로서의 카세트테이프는 가급적 구매하지 않았다. 카세트테이프는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많이 들으면 늘어짐이 생기곤 했고, 카세트 플레이어 안에서 속된 말로 씹히기라도 하면 끝장이었다. 그래서 소장용으로는 카세트테이프가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LP를 구매하고 그것을 공테이프에 녹음하는 수고를 더해 휴대하고 다녔다.
(카세트테이프와 더불어) LP만 있었던 시기를 지나, 90년대 초반 CD가 등장한다. 잠시 공존하는가 싶더니 LP로는 발매되지 않는 음반이 늘어갔다. 그리고 서서히 LP는 사라진다. 선택의 여지없이 비싼 CD로 구매해야만 했다.
CD가 LP가격의 2배가 되는 구조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음반을 꾸준히 구입하던 사람들은 2장을 살 수 있었던 금액으로 어느 순간 1장밖에 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CD로 생산하는 것이 과연 2배의 원가가 투입되는 일이었을까? 100장 단위로 인터넷몰에서 판매되던 공 CD(단가:100~200원)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랬다. 음악을 담는 매체의 변화를 모두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CD만의 장점이 물론 있지만, 더 이상 LP로는 음반이 발매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CD를 구매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어찌 되었건 생산자들은 과감하게 LP를 버리고 CD를 선택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소비자로서 경험했던 음반시장이다.
형태를 달리하며 음반은 진화했다. 매체의 변화라는 것이 음악 소비자에게 주는 부담은 단순히 음반 단가 상승만이 아니다. LP를 구동하는 턴테이블을 비싸게 장만했는데, CD를 작동시킬 장비를 또 갖추어야 했다.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는 물론, LP와 CD를 재생하는 기기들은 더더욱 값비싼 물건들이었다.
생산자는 아마도 생산하기 더 편하고, 더 많은 이익이 생기는 쪽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더 나은 음질을 제공한다는 설명만 붙이면, 어떤 상황을 제공해도 음악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은 늘 충직했다. 항상 새로운 음악을 원하고 또 구매했다. 괜찮은 콘텐츠만 실리면 불티나게 팔렸다. 그리고 재생을 위한 구동장치는 언제나 각자 알아서 잘 조달했다.
20세기에 열심히 음악을 들었다. 21세기에도 음악을 듣고 있지만, 같은 일이 너무 달라졌다.
무엇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해졌다.
가진 권력은 절대 스스로 내려놓지 않는 것이 기득권의 습성인데,
“음반 생산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