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유어스
정말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곳곳에서 산불과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이 비를 두고 연휴를 망친 날씨라 비난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만 같다.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너무 더운 날씨에 이런 비를 기다렸던 이들이 그렇지 않을 이들보다는 더 많을 것 같다.
집에서 나와 우산을 피려는데, 출입구 옆에 제법 핀 이름 모를 풀이 눈에 띄었다. 저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을 때마다 크게 고개를 숙였다 드는 것 같은 움직임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반응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이런 움직임을 볼 때 흔히 쓸 수식어인 ‘한참을 바라보았다.’라는 구절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실제로도 그 장면을 본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으니. 풀들의 움직임은 수십 번을 넘긴 했다지만, 시간의 의미를 그토록 자의적으로 적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고 한다면 그냥 내가 조금 이상한 편이라 그렇다고 말하겠다. 이 글을 적으며,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를 또 확인해본다. 1시간을 넘게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 딱 1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의 주관적 길이는 언제나 재정의가 필요한 듯싶다.
오늘 마시는 커피는 내추럴 커피인가, 묵직한 산미가 마치 그런 느낌이다. 설명해주실 때 제대로 들을 걸.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좋다. 평소보다 빨리 비운 커피가 아쉬워, 아직 바닥에 깔린 커피 방울을 슬쩍 맛본다. 여전히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