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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민 Oct 23. 2020

할아버지를 위한 추도시, 귀거래사를 다시 읽다.

어느 암환자의 웰다잉, 따뜻한 죽음에 대하여

도연명의 귀거래사, 마지막 낭독

 

 4개월동안 병상에 누워계셨던 할아버지가 94세의 나이로 소천하셨다. 발인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와 할아버지가 눈을 감기 2주전 병상에 누워 완송하셨던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다시 읽어보니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그때는 예사로 들렸던 싯구였는데 밥한톨 넘기지 못하는 몸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굳이 귀거래사를 끝까지 읊조리고 싶어했는지 할아버지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고 싶은 실오라기 같은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 삶을 돌아보니 알게된 안분지족의 흡족한 마음, 그래서 생의 마지막임을 알면서도 마음은 평온하다는 이야기들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셨던거 같다. 여한이 없으니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던 이유를 알거 같았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가볍게 흔들리고,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의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웰다잉well-dying을 생각하다.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셔서 그런지 가족들은 슬퍼하는 마음보다 할아버지에게 또 남겨진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컸다. 마지막까지 함께 먹고 자며 밤낮으로 할아버지 수발을 들던 이모에게 다들 감사했고, 끝까지 병원을 가지 않아도 견딜만하게 만들었던 내 치료행위에 몸둘 바 모를 정도로 과하게 고마워들 하셨다.


할아버지는 14년차 전립선암 환자였다. 노인의 전립선암은 진행이 느린 경우가 많아서인지, 관리맨인 할아버지가 건강관리를 잘하셔서인지 이유는 알수 없지만, 암덩어리는 전혀 할아버지의 수명을 깍아내리지 못했다. 불과 4개월전까지만 해도 베란다에서 국민체조를 시작으로 아침을 열고 몸이 약해 매일 아픈 할머니를 위해 식사를 차려내셨던 할아버지였다. 갑자기 여기저기 암이 전이되며 무너지시기까지 모두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앞서 가실거라고 예측을 했었으니깐... 그런데 삶이라는게 참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했던가.. 평생을 골골하셨던 그래서 몇번이나 자식들을 불러모아 유언을 하시곤 했던 할머니께서는 아직도 살아계시고 그런 할머니를 살뜰히 챙겨 94세의 나이까지 함께 끌고 오셨던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뜨셨다. 동갑이신 두분은 17살에 만나 94세까지 그야말로 백년해로를 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내고 가끔은 눈물바람이시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계신다. 남은 삶을 잘 살아보시겠다고 힘을 내신다.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두분이다 싶다. 나는 두분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한걸음 더 성장했다.


쓰러지시고 병상에 누우면서 절대 병원에서 약에 쩔어 세상을 뜨고 싶지 않다는 그 마지막 다짐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엄마와 이모, 외삼촌은 최선을 다해서 4개월을 함께 했다. 나는 손녀로서 한의사라는 내 직능을 할아버지의 소망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쓰려고 했다. 삶을 연장할 수는 없지만, 집에서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데 촛점을 맞추는 것이였다. 다행스럽게도 암덩어리가 커지면서 생기는 극심한 통증이 할아버지의 정신을 잠식하지 않도록, 마약성 진통제를 쓰지 않아도 버틸 수 있게 하는데 한약과 침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거 같아 마음이 참 좋다. 한의사로 살려고 결심했던 20년전 내 선택에 너무 감사할 정도로.. 돌아보니 정말이지 슬프면서도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병상에 누우신 뒤 곡기를 끊으시고 물과 유동식만으로 연명하시다가 세상을 뜨기까지 할아버지를 몇달간 매주 뵈면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오롯이 지켜봤다. 죽음을 날것 그대로 목격하면서 죽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았다. 잘 죽는 것이 세상없는 행운인 것도 알았다. 말기 암환자도 병든 육체라도 생의 마지막 숨을 가치있게 거둘 수 있는 걸 알았다. 그것이 웰다잉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런 가치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늘 깔맞춤으로 옷을 차려입으시던 멋진 중절모 신사 할아버지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나를 불러세운 뒤 두 손을 꼭 붙잡고 하나,두울,셋~ 유쾌한 인사를 건네던 병상에서의 마지막 모습 잊지 못할거에요. 사랑합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존경합니다. 그 어느 순간 나의 삶의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면 할아버지의 의연한 죽음을 닮은 또 하나의 웰다잉을 실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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