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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 좋아하시나요?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깨달은 것들

by 변대원 Mar 07. 2019

나는 중고서점 매니아다.

물론 새 책도 좋아하지만, 손때 묻은 중고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다. 가끔 이전 사람의 메모를 발견하기도 하고, 책장을 넘기다 가을에 곱게 물든 단풍잎을 만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네잎클로버를 곱게 코팅해서 꽂아 둔 것을 발견해서 네잎클로버를 본적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우리 딸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하루 동안 빌려가서 학교에서 자랑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천원에 산 책 안에 천원짜리 지폐 3장이 꽂혀있어서 책사고 돈벌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문득 생각해보니 그 때 중고책 판매하시는 분이 같이 주문한 책 한권이 재고가 없어서 현금으로 넣어주신다고 한 것을 까먹고, 나혼자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윽, 가끔은 계속 생각이 안 나야 더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나보다.


어쨌거나 중고책을 참 좋아하고, 필요한 책은 늘 중고책부터 검색하곤 한다. 중고책을 좋아하다보니 중고서점도 자주 가는데, 운 좋게도 사무실이 신논현역 근처에 있다보니 강남역에 있는 예스24중고서점, 알라딘 중고서점을 자주 가는 편이다.

서점을 가는 이유는 수십가지겠지만, 결국은 책을 사러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종종 그곳에서 나와는 다른 목적으로 서점을 방문한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책을 팔러 오신 분들이다.


나는 사실 책 욕심이 많아서 책을 사기만 할 뿐 읽은 책을 판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분들도 책을 팔기 위해 서점을 방문한 수십가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더 이상 소장하고 싶지 않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 중고서점이구나.’


언젠가 교회에서 교인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 얼마나 될 진 모르지만, 별도의 예산없이 100% 기증받아서 책장하나정도를 채워보려고 했었다.

그 때 기증을 부탁하던 글에 당부했던 말이 기억난다.


“읽지 않는 필요 없는 책은 기증받지 않습니다. 대신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으로 한권씩만 기증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먼지 쌓인 책들로 책장을 채우는 게 싫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의 기억들. 그 반짝이는 순간들을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도서관이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기증한 책과 몇 분을 제외하고는 기증자가 별로 없었다. 대신 책 한권 값을 기증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적게는 만원에서 5만원까지. 그 돈을 기부 받아 책장하나를 꾸려보았다. 그렇게 내 생애 첫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밀알도서관’


물론 찾는 사람도 많지 않고, 책도 별로 없지만, 뭐든 많아야 의미도 많아지는 건 아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책이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다가온다는 것은 매우 우연해 보이는 만남이기도 하지만, 그 책을 쓴 작가와 그 책을 만든 편집자, 그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그 책을 진열한 서점직원의 크고 작은 노력과 정성이 모여서 이루어진 만남이다.


책도 사람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 반짝이는 법이다.

책을 쓴 작가도 자기가 쓴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책을 만든 편집자나 디자이너도 책과 상관없이 그저 하나의 일로만 만들어진 책은 누군가의 가슴을 뒤흔들 수 없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정말 좋은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도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혼신을 다한 멋진 책이 누군가 그 책을 읽고 감동한 한 사람으로 인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문득 정말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만 빼곡히 내가 좋았던 문장과 느낀 점을 정리해서 정갈하게 정리해서 그 책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아주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읽지 않아 팔고간 책들만 잔뜩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비록 몇 권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읽고 감동받았던 책들만 하나씩 정리해 놓은 책방이 있다면, 작지만 정말 매력적인 서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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