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책을 내면 누구나 작가가 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26살에 첫 책을 낸 저는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작가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종종 아이들 학교 선생님께 연락을 받습니다. 때론 잘해서 칭찬해 주시는 내용도 있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숙제를 안 가져와서 집에서 조금 더 신경 써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어른들 눈에서는 여전히 아이입니다. 그러니 부모인 저에게도 연락이 왔겠지요. 사실 제 기준에서 아들이 숙제를 하든 안 하든 그건 아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학원도 가고,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놀기도 해야 하니 초등학생으로 산다는 게 그리 한가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늘 스스로 자기 일을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여러 가지 제한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만 확실히 서로 약속하고(숙제, 공부, 목욕, 양치 등) 그 외 시간에는 게임을 하든 친구들과 만나서 놀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편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나온 과제의 분리를 실천한 결과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들이 숙제를 안 한 것 때문에 선생님께 연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죠. 아이들의 행동에는 여전히 부모가 더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된다는 뜻일 겁니다.
작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혹한의 아침에, 혹서의 한낮에, 몸이 나른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자, 힘을 내서 오늘도 달려보자'라고 따스하게 격려해 줬습니다.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책임을 다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글만 잘 쓰고 글로만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아는 것이죠. 글만으로는 정말 원하는 곳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매일 정해진 거리를 달리고, 정해진 시간 동안 묵묵히 써 내려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될 만큼 힘든 시기에도 '자, 힘을 내서 오늘도 달려보자'라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글들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책에서 줄곧 소설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어떤 직업의 어떤 일을 대입해도 보편적인 상식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렇게 소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내 글이 내 삶과 닮아야 하고, 인생을 스스로가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가능합니다. 만약 평생동안 딱 시 한 편을 남겼더라도 그 시가 그의 인생철학을 담고 있고, 스스로 자신의 말에 책임질만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진정한 작가일 것입니다.
<BOLD>를 쓴 피터 디아만디스도 피터의 법칙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책에 쓰인 대로 하라. 단, 저자가 되라."
그의 말은 자신이 아는 가장 훌륭한 생각을 책으로 쓰고, 그 책에 쓴 대로 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모두가 책을 쓸 필요는 없지만, 작가는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가란, 완벽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삶을 통해 발견해 낸 가장 진실된 문장을 쓰는 사람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나와 타인의 삶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