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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Jul 05. 2023

#_쓸수록 겸손해진다

너무 큰 것은 가까이서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가 화창합니다. 희뿌연 하늘을 예상했는데, 파아란 하늘과 구름을 보니 마음속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날씨도 글감이 됩니다. 만약 한 번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했던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잠시 하늘을 바라볼 것이고, 맑고 환한 하늘이 주는 좋은 에너지를 듬뿍 받을 수 있게 될 것이기에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화창함이 반가운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사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갑작스럽게 사무실을 이사해야 했는데, 그런 환경의 변화와 어수선함은 제가 유지해 온 몇 달간의 질서가 무너지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좋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내면의 질서가 헝클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마음이 산만할 때는 저는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 않는 편입니다. 주변부터 정리하는 게 항상 더 좋았습니다. 쌓여있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책상이나 책장을 정리하고, 방청소를 하고, 집안 곳곳을 정리정돈을 합니다. 우리가 우리인 이유는 아주 작은 것들이 쌓이고 반복된 결과입니다.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니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친구들을 만나고, 회사를 다니고, 그 속에서 거쳐간 수많은 작은 일상들이 모여서 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결국 나를 만드는 재료들임을 알게 됩니다. 내 주변의 질서가 잡히고, 내 몸의 질서를 회복하면, 내 마음의 질서도 자연스럽게 잡힐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매일 글을 쓰는 일상도 저에게는 소중한 질서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함께 나누면 가치 있을 생각들을 한 두 스푼 덜어내어 글을 씁니다. 흡사 곱게 갈아놓은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저에게 원두를 가는 작업은 독서입니다. 책을 읽으면 내가 알던 생각들이 잘게 쪼개지고 섞이면서 글을 쓰기 좋은 재료로 다듬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난 책은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입니다. 작가의 글 위에 뜨거운 내 생각을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부으며 핸드드립 에세이를 내려 봅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고 했던 말속에 숨겨진 특별한 겸손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겸손함을 갖추기 위해 애써야 한다. 칭기즈 칸은 이미 그 덕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철학자였던  그 시대에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가장 뛰어난 연설가여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지혜가 특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본질적 무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해 해변가에 살고 있는 지혜로운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바다에 살고 있으니 바다를 잘 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 물고기가 자신의 일생동안 아무리 많은 바다를 경험한다고 해도 대서양과 인도양을 알지 못할 겁니다. 북극해와 심해 깊은 곳의 바다는 상상도 못 하겠지요. 물론 그가 알고 있는 바다 역시 바다인 건 분명하지만, 전부가 될 순 없습니다. 그 지혜로운 물고기가 더 많은 바다를 탐험할수록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아는 바다보다 내가 모르는 바다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겸손은 짐짓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배움을 통해 알게 되는 겸손은 그저 나의 보잘 것 없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고 궁금한 게 많아지는 게 배움의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어서 윈튼 마살리스의 말을 인용하며 겸손함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래미상을 아홉 차례나 받았으며 퓰리처상까지 받은 재즈계의 대부 윈튼 마살라스는 촉망받는 청년 연주자를 만났을 때 평생 음악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겸손함이야 말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자기 눈에 장막을 쳐버리는 거만함을 내쫓는 것이 바로 겸손함이기 때문이죠. 당신이 겸손할 때 진실이 당신 눈앞에서 저절로 자기 모습을 펼쳐 보일 겁니다."


겸손해야 배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며 내가 얼마나 배움에 있어 거만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도 머리로만 "아~ 좋다"라고 그나마 밑줄치고 책을 접어 놓는 것까지가 저의 배움이었습니다. 진정 겸손한 상태는 내가 아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내 수준에서의 판단을 보류한 채 그 배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일텐데 말이죠. 그런데 저는 내가 아는 것을 내려놓지 않았고,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거만하게 작가의 글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도 온전히 배우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을 겁니다.


글을 쓰면서 자꾸 내 안에 못난 나를 발견합니다. 오랫동안 꾸욱꾸욱 감추며 살았던 모습, 나라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때때로 발견합니다. 여러 번의 조우를 거쳐 저는 그런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보니 배울 게 더욱 많아집니다. 글이 자꾸 나에게 겸손하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즉각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상태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과 가장 탁월한 장점은 너무 커서 가까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얀 종이 위나 모니터 위에 글로 적어둔 나를 보며 흠칫 놀랍니다. 가까이에선 보이지 않았던 나의 커다란 무기와 긴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보려면 조금 더 나를 온전히 글 위에 내려놓아야 하나 봅니다. 쓸수록 겸손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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