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듣고 있으면 설명하시는 분도 당황하곤 합니다. 계속 그거라고만 말할 뿐, 상대가 이해할만한 구체적인 단어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계속 '그거'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을 상대방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풍경을 설명하려면 충분한 언어가 필요한데, 평소에 다양한 어휘를 통해 다양한 머릿속 풍경을 설명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막상 사소한 것 하나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몇 년간 강의한 것을 금방 책으로 쓸 줄 '착각'했지만, 막상 쓰고 보니 무려 6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 중 하나. 머릿속과 종이 위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황효진 작가는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머릿속에 뿌옇게 존재하는 콘텐츠의 씨앗을 우선 발견하고 발굴하려면 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일단 꺼내 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꺼내 보기 전까지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진짜 아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막연하던 나의 머릿속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처음에 이 괴리감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건 사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쓸 수 있는 것의 차이는 무척 크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생각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연습부터 자꾸 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완성된 문장을 뚝딱 만들려고 하니까 어려운 겁니다. 그러니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힘들어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준비운동이나 스트레칭부터 한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옮겨 보세요.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이상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더라도 괜찮습니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자연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위대한 작가들도 초고는 쓰레기와 같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와 같습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의 씨앗을 꺼내놓는다고 생각하세요. 쓰다 보면 그 내용에서 싹이 올라올 겁니다.
물론 내가 뿌린 모든 씨앗이 다 열매를 맺지는 못하더라도, 열매를 맺고 싶다면 우선 씨앗부터 뿌려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저도 오늘 하루종일 다른 일정 때문에 바쁘다가 밤늦게 귀가해서 새로 산 책도 읽어보고, 내가 생각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글을 써보고 있습니다. 그 글 역시 엉성함 투성이겠지만, 이런 과정이 더 나은 생각의 싹을 틔워줄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