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그대로 있는 게 나다운 게 아니다
생긴 대로 살면 되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마치 무언가를 배우면 원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저 역시 한 때 나다움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나다운 것은 내가 원하는 삶과 내가 살아가는 삶이 일치할 때 발현됩니다.
우리가 성장하지 않을 때 나다움은 그저 가능성의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씨앗이 어떻게 꽃 피우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알갱이는 더 깊이 뿌리내려 끊임없이 땅속의 양분을 받아들이고, 더 넓고 높게 잎을 벌려 햇빛을 충분히 받으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고 꽃 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를 하나의 '주어진 것', 즉 '자기가 있는' 것으로 '있는' 하나의 주어진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중략) 다시 말해 자기가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있는 지향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일이다. - 장 폴 샤르트르 <존재와 무>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사실 같은 질문입니다.
내가 어떤 씨앗인지 묻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고 싶은지 묻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씨앗의 DNA를 분석하여 다른 씨앗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본질은 아닐 겁니다. 그 씨앗이 성장해서 어떤 식물로 자라는지 지켜보면 될 일이니까요.
결국 성장해서 증명하는 것이 삶입니다.
당신은 어떤 삶으로 당신을 증명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