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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19. 2023

#_어느 작가 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

답장이 늦었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답장은 꼭 쓰고 싶어서 이렇게 짧은 글을 남겨봅니다.

레스토랑에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의 공기가 기분 좋아 불쑥 끼어들었다고 하셨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용기를 내주어서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사진을 찍어주시고,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글을 꿈으로 삼았다가 취미로 만족하며 이어나가고 있다"고 하셨지요. 저 역시 비슷합니다. 글은 꿈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하며, 평생의 동반자이자, 절친이며, 때론 말 안 듣는 5살 아이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작가"라는 단어가 참 속절없이 설레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라니, 표현도 어쩜 이리 멋지게 하시는지, 제가 볼 때 당신은 이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스스로가 규정한 어떤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을 뿐일 겁니다.


조만간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거예요. 우리가 만났을 때 이야기한 것처럼 당신께 초대메일을 보냈으니 함께 할 수 있겠죠? 


저는 요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책을 낭독하고, 제임스 앨런의 글을 필사하고 있답니다. 또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해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잠깐씩 찾아오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책을 정리하기도 하느라 말이죠.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것에서 멈출 뿐이다.
- 스코틀랜드 화가 폴 가드너


무언가를 읽고 쓴다는 것은 마치 숨 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어쩌면 글을 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꼭 책만 읽어야 하는 건 아닐 거예요. 우리는 매 순간마다 무언가를 읽고 있으니까 말이죠. 마주 앉은 사람의 표정을 읽고, 그날의 내 감정을 읽고, 새로운 장소의 분위기를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메시지들을 읽고, 그렇게 끊임없이 읽으며 살아가니까 말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읽은 것들을 천천히 내뱉듯 글을 쓰다 보면 다시 무언가 읽고 싶어 지더군요. 

숨이 우리 몸의 호흡이라면, 글은 우리 삶의 호흡이 아닐까요?


작가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고 화려한 선반 위에 올려놓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글을 밥그릇처럼, 젓가락처럼 느꼈으면 해요. 그렇게 글이 일상에 가까이 놓여있는 사람이 훨씬 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이 하나의 요리라면 우선 계란프라이처럼 간단한 것부터 매일 스스로 해 먹을 줄 아는 습관을 만드는 게 우선일 거예요. 계란프라이가 익숙해지면 반숙과 완숙을 조절할 수 있게 될 테고, 프라이팬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그 위에 취향껏 얹어 먹을 수도 있겠네요.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프라이팬을 다뤄보지도 않고, 어느 정도 불 세기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도 없이 바로 레시피만 보고 어려운 요리부터 완성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당연히 맛있는 요리가 나올 리가 없을 테고, 그렇게 실패한 요리를 먹으며, 난 왜 이렇게 요리를 못할까 혹은 요리는 왜 이렇게 힘든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매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한 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간단한 오뎅볶음부터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 날 전골도 끓일 수 있게 되고, 크림파스타도 뚝딱 해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오잖아요. 글을 쓰는 것도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매일 습관적으로 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꾸준히 하다 보면 점점 자신이 붙고, 재미가 붙고,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부디 당신이 오늘부터는 매일 즐겁게 자신을 위해 간단한 글밥부터 지어보길 바랄게요.

요리 자격증이 있다고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요리를 많이 해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본 사람이 진짜 요리의 고수가 되는 거죠.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용을 너무 구구절절 설명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이것만 하나 더 알려드릴게요.

오늘 제가 당신을 위한 답장을 이렇게 하나의 글로 남기는 것도 또 다른 형식의 수업이랍니다.

글을 쓸 때 내가 누구를 향해 쓰고 있는지가 명확할수록 더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편지가 저에겐 큰 영감이 되었답니다.

그럼 수업 때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작가를 꿈꾸는 특별한 당신에게 

존경과 진심을 담아, 책곰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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