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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10. 2019

 #_독서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독서의 가치는 달라집니다.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를 읽으신 분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질문은 책이 재미없다는 질문이었습니다. 책이 재미없다는 것은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과 똑같은 말입니다. 맛없는 음식은 찾아먹기 힘들죠. 재미있는 책을 읽으라고 말했는데, 도무지 책이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직 맛있는 음식을 안 먹어봐서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단 말이죠.


아주 간단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가보겠습니다.

도대체 '재미'라는 것이 뭘까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재미를 느낄까요?


재미는 크게 3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으로 설명하면 재미없으니까(?) 게임으로 설명해 볼까 합니다.

게임은 왜 재미있을까요? 첫 번째는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것은 재미있습니다. 빽빽한 일정으로 누군가가 정해놓은 방법에 따라가야 할 때는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재미가 없죠. 게임은 적어도 그 게임 속 세상에서 자유롭습니다. 자유가 주는 의미는 새로움입니다. 자유로우면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넘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됩니다. 게임을 할 때는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미션이 계속 나옵니다. 똑같은 미션만 반복하면 아무리 게임이라도 금세 지루해지죠. 이런 새로운 자극에서 재미를 느낍니다.(아실지 모르겠지만 책도 엄연히 새로운 자극입니다. 흠흠)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 새로운 영화를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선택이 자유롭고, 새롭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재미는 성장에서 옵니다. 게임 속에서 캐릭터를 아무리 자유롭게 꾸미고 새롭게 만들더라도 그 캐릭터가 성장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죠. 한 달 동안 열심히 노력했는데 레벨이 겨우 1 올랐다면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지루해하면서 포기하고 말 겁니다. 롤플레잉 게임(RPG)의 경우 초반에는 조금만 해도 금방 레벨업이 됩니다. 조금만 해도 새로운 장비 같은 걸 막 주죠. 그래야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미의 본질은 성장에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탁월성을 발견하고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는 이게 쉽지 않죠. 방법도 잘 모르고,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게임은 쉬워요. 아주 간단하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중에서도 성장 스토리는 모두가 좋아합니다. 그 스토리를 통해 내가 대리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세 번째는 관계입니다. 재미 중의 최고의 재미는 다른 사람이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 기쁨입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어요. 대체로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공감과 인정이 넘칩니다. 그런 만남은 재미있죠. 게임 비유를 들었으니 이 부분도 설명을 곁들이자면, 게임의 새로움도 잠깐이고 성장하는 것도 금세 어려워집니다. 이때 게임을 관둘 수 없게 만드는 재미가 바로 관계입니다. 게임 속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고, 격려하고 격려받으면서 즐거움을 느끼죠. 오랫동안 게임에 빠지는 사람은 대체로 그 게임 속 세상에서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쯤 되면 재미가 뭔지,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이해하셨을 것 같군요.

그럼 다시 이 재미를 책으로 풀어 봅시다.


독서가 재미있고 즐거우려면 우선 자유로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 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때 더 재미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읽은 책은 또 의미도 있죠. 왜냐하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는 기준 자체가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맛'같은 것이니까요.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오늘은 왠지 이런 게 먹고 싶어 하는 날. 짬뽕이 먹고 싶을 때 짬뽕을 먹어야 '그래 이 맛이야'라고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법이지요. 평소에 아무리 짬뽕을 좋아해도 오늘 비빔밥이 끌린다면 그날은 비빔밥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날 억지로 짬뽕을 먹어봐야 평소만큼 맛있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맛은 지금 내가 원하는 새로운 콘텐츠입니다. 책도 똑같아요. 내가 읽고 싶은 걸 자꾸 읽어봐야 내 취향을 알게 됩니다. 자유가 새로움을 낳고 그 새로움은 자유를 줍니다. 그게 내가 읽고 싶은 책부터 읽을 때만 가능한 선순환이지요.


두 번째 성장입니다. 독서는 성장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도 성장하지 않으면 이유는 2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 성장의 출발점이 틀렸거나 둘째 책을 깊이 읽지 않아서입니다.

1) 성장의 출발점이 틀렸다는 말부터 설명해 볼까요?

책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하나씩 찾게 도와주는 보물지도입니다. 책에 있는 표시된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렇게 10권을 읽고, 20권을 읽었는데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우는 내가 어디서 출발하는지 잘못 알고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보물지도가 있어도 내가 그 지도 위에 어디 있는지를 모르면 그 지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장은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책을 많이 읽고 싶고 잘 읽고 싶은 사람일수록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 출발지점의 오류입니다. 지금 내 수준에서 좋은 책, 재미있는 책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지금 내 위치를 오해합니다. 보통 자기 수준보다 어려운 수준의 책부터 읽으려고 덤버들죠. 그럼 재미가 뚝 떨어집니다. 그 책이 좋은 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아직 내가 그 책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암튼 재미가 떨어졌으니 책을 한동안 못 보다가 다시 좀 읽어봐야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좋다는 책을 찾습니다. 역시 재미가 없겠죠. 이런 재미없는 시도를 반복하니 '역시 나는 책이랑은 안 맞는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자기 내면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인지왜곡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이런 인지왜곡이 출발지점을 잘못 이해하게 만듭니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아주 쉬운 책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쉬운 책을 보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건 쉬운 책을 읽어야 하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읽더라도 출발지점만 정확하면 금세 성장합니다. 금방 아는 게 쭉쭉 늘어나니 재미있죠. 궁금한 게 자꾸 많아집니다. 그런 호기심으로 한 권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제법 전문가다운 식견이 생깁니다. 이처럼 성장의 출발점만 제대로 알아도 책을 읽은 만큼 성장합니다.

2) 책을 깊이 읽지 않는 경우입니다.

책은 한번 읽고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에 굳이 다 읽을 필요도 없죠. 책은 우선 필요한 만큼만 봐도 무방합니다. 스스로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러려면 지식의 깊이를 갖추어야 합니다. 책 한 권을 한 번만 읽어서는 깊이를 갖출 수 없습니다. 물론 여러 책을 많이 읽어도 같은 장르의 책이라면 아는 것은 많아지지만 깊이가 생길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한 권의 책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생각의 뼈대를 잡고, 거기에 근육과 살을 붙여 만들어 냅니다. 보통 처음 한번 읽고 뼈대까지 다 이해하기 힘듭니다. 처음엔 겉으로 드러난 살만 보이지만, 한번 더 읽으면 그걸 움직이는 근육이 보이고, 또 한 번 더 읽으면 그 근육을 지탱하고 있는 뼈대가 보입니다. 그렇게 한 권을 여러 번 재독하면서 깊이 읽으면 그 작가가 가진 것과 비슷한 생각의 뼈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후 다른 책을 읽으면 훨씬 더 책이 잘 읽어지고, 똑같은 텍스트를 읽지만 얻는 정보는 훨씬 많아집니다.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밑줄 치고,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읽으며 그 생각을 들여다보고, 또 중요한 걸 발견하면 메모하기를 반복하면서 책을 읽으면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독서의 목적은 눈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작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면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독서는 재미없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의 세 번째 요소는 관계였죠. 우선 내 기준이 잡혀있는 사람은 책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작가를 직접 만나면 작가님, 선생님, 교수님, 대표님 등등의 훌륭하신 분이겠지만, 일단 책은 책이잖아요. 친구처럼 대해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 한 수 가르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같은 방식보다는 '야 그러지 말고~ 나한테 방법 좀 알려줘 봐~'같은 느낌으로 대화하는 게 편하고 재미있으니까요. 책과의 관계는 내 취향대로 읽어나가다 보면 스스로 어떤 작가, 어떤 장르가 좋은지 몸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읽다 보면 촉이 와요. 그렇게 혼자 책을 읽으면서 웃고 감탄하고 손뼉 치고 눈물 흘리는 경험들을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런 애정 어린 관계가 형성되면 책이 자꾸 보고 싶습니다. 나를 변화시켜주는 책의 힘은 결국 이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자, 이 정도면 책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설명이 되었을까요?

책을 재미있게 읽기 시작해 보세요. 정말 많은 게 달라집니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메트릭스 세계가 초록색 텍스트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듯이, 세상을 보고 남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저도 이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일 뿐이라 그다음에 뭐가 있는진 아직 잘 모르겠네요.

대신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주 잘 압니다. 그건 각자 자기가 얻고 싶은 보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재미있게 시작한 독서가 삶의 무기가 됩니다.

무심코 발견한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보물지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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