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닌, 보이는 글을 들여다 보기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사람을 제법 빨리 파악하는 편이었습니다.
몇 마디 나눠보고 그 사람의 일부 행동만 봐도 딱 답이 나왔달까요?
젊은 시절에는 그런 감각이 사람관계를 무척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은 가볍게 거르고,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들과만 어울리면 되었으니까요.
그러다 나이가 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젊은 시절에 가졌던 그 감각은 많은 사람들이 그 영역과 깊이만 다를 뿐 일반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베네딕트 컴버비치가 연기하는 영국드라마 <셜록>에서처럼 그런 감각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아주 사소한 말이나 행동만 가지고도 상대방의 심리나 생각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 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의 표정이나 행동만으로 감정이나 상황을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저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안테나'라고 표현하는데, 안테나를 켜면 평소보다 조금 더 유심히 상대방의 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바디랭귀지에도 집중할 수 있는데, 반대로 안테나를 끄면 매우 둔감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많이 사는 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런 안테나가 늘 켜져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에 민감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 속담처럼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하나의 상황이나 단편적인 사실을 통해 헤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을 단정 짓거나 판단해 버리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만 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세심하고 자상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지만, 저를 오랫동안 알고 있는 친구들은 저의 한없이 무신경한 상태(안테나가 꺼져있는)를 많이 경험하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안테나를 끈 상태의 저의 모습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과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이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바로 내 마음도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타인을 쉽게 판단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을 뿐이랄까요.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행동으로 변화시켜 준 것이 바로 '글'이었습니다.
우린 보이지도 않는 내 마음 혹은 타인의 마음을 보려 애쓰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란 건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보였다고 해도 그것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글은 조금 다릅니다. 글에 내 마음이 다 담기는 것도 아니고, 글로 적었다고 해서 다 진실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대신 글은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저는 생각이나 마음을 글로 쓰면 막연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적지 않았다면 아무런 변화도 성장도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도 적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책만 읽는 바보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다른 글에서 또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쓴 글이라고 해서 전부 내 생각이냐면 그렇진 않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한 것들이 이리저리 어우러져 담겨있다가 글에 함께 묻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글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만들어내 그 생각 주변의 풍경들까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글의 제목은 얼마 전 우연히 스쳐가는 생각을 붙잡아둔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그 문장 주변에 있던 제 생각의 풍경들을 이렇게 풀어봅니다. 이렇게 하나씩 내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의 퍼즐처럼 글로 하나씩 남기다 보면 커다란 내 마음의 풍경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