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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디자이너 Dec 18. 2021

마음으로 안기까지, 11년

타로 성찰 이야기

타로 8번  카드에는 사자와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땅끝까지 끌리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자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힘센 사자는 그녀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듯 꼬리는 축 내려뜨리고 여인에게 얼굴을 맡긴 채 순종적인 눈빛으로 그녀의 손을 핥고 있다. 뒤로 보이는 배경에는 푸르른 초원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평온한 모습이다. 능숙하게 사자를 다루는 그녀의 머리 위에는 무한대의 고리가 떠 있다.


 


Strength Tarot Card Meanings



그녀는 무서운 사자를 어떻게 길들였을까?


 여인의 힘으로는 결코 사자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카드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초등학년 5학년인 아들과의 관계가 스쳐 지나갔다.     


 아들은 전보다 많이 차분해졌지만, 그전에는 의견을 들어주지 않으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거나, 바닥에 누워 분이 풀릴 때까지 온갖 짜증과 떼를 쓰며 울었다. 화가 나면 야생 동물처럼 으르렁거리며 나를 할퀴고 덤벼 내 팔은 아들이 할퀸 상처로 성할 날이 없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들을 살살 달래보기도, 매를 들기도, 엄마의 권위를 이용해 큰소리치며 아들을 힘으로 누르기도 했다.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우리는 싸웠다가 풀어졌다가를 매일 같이 반복했다.          


  친정아버지 생신날-어릴 쩍 이혼으로 부모님은 따로 살고 계셨다- 언니와 남동생 식구들이 아버지 댁에 모인 날이었다. 저녁때쯤 되어 화장실로 들어가는 아들에게 손과 발을 씻으라고 했다.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언성을 높였고, 아들은 더 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 몸이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고! 엄마는 신경 끄라고! 상관 말라고!”     


 아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와 울부짖음으로 화장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아버지께 애하나 건사 못한다는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들을 강압적으로 제제하려고 몸을 붙잡고 씻기려 했다. 아들은 내손을 뿌리치고 완강히 거부하면서 울어댔고, 놀라서 온 남편이 상황을 정리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 씻기는  못 하는 엄마가 되어있었고,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앉았다. 웃음꽃은 사라진 아버지는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율이 병원이라도 데리고 가봐라. 전부터 보니 어디가 많이 안 좋아 보인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제가 왜 저러는 줄 알아요? 나한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래요! 내가 어릴 적에 아빠한테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서 나 때문에 아픈 거라고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내 속마음을 용기 내어 말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참아온 마음을 내뱉으니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 눈물을 삼켜버렸다.



그러다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아들보다 내가 더 문제 같았다. 힘들어하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운 마음이 들었다. '저런 애가 도대체 왜 내 아들로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미워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10회 상담을 받고, 세 차례 반복했다. 상담을 받으면 그때뿐이었다. 많은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왜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가 없을까?
      


 그쯤  친정엄마는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이혼한 아버지에 대해 매일 전화로 30분씩 하소연을 했고, 나는 더욱 지쳐 같다. 그러던 중 동네 책방에서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하게 되었고, 10개월간 친정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외도와 이혼, 새엄마의 학대, 다시 친엄마와 살며 어려웠던 그때의 글을 쓰다 보니 어린 시절 내가 보였다.


 

 '어린아이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살던 집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 울고 있었다. , 다리는 삐쩍 말라 가느다랬고, 아이는 몸으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있는 것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아들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투영되어 보이는 어릴 적 내 모습을 미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화가 나면 감정 조절이 안 돼 울음을 먼저 보이는 날 닮은 아이, 내가 아들을 안아 줄 수 없었던 이유는, 나는 몸만 자란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 울었다. 운전하다가, 밥을 먹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가 나를 위해 하염없이 울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면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며 나에게 안겼다.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너 잘못이 아니야. 이제는 내가 너를 지켜줄게.’


나는 내면 아이의 등을 토닥였고 아이는 날 보며 치아를 들어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시기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아들이 울어도 혼내지 않았다. 안아줄 힘이 생겼고 달래줄 수 있었다. 내가 낳은 아이를 가슴으로 안아주기까지 11년이 걸린 셈이다.

 

 다시 바라본 타로 8번 힘 카드 속 여인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그녀는 편안해 보이는 눈빛과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짓으로 마음을 교감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사랑의 힘은 말이 아니라 ‘인내하는 가슴’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 여인의 머리 위에 있는 무한대가 고리가 보란 듯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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