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인 찬스'를 쓰지 않은 이유

by 민경민
드라마 <미생> 15화. 자기 노력으로 입사했지만 지인 찬스를 쓰는 장백기와 지인 찬스로 입사했지만 자기 노력으로 주어진 일을 하려는 장그래의 묘한 대비


유료 콘텐츠 플랫폼에 처음 채널을 오픈할 무렵의 일이다. 소식을 들은 친형이 회사 사람들에게 내 채널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던 걸 내가 극구 만류한 적이 있다. 정 다른 사람들에게 채널을 소개하고 싶으면 내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말고 작가의 글만 보여주고서 마음에 들면 구독을 하게끔 했는데, 그건 내가 신뢰하는 몇몇 친구들에게 채널을 소개할 때도 꼭 단단히 주의를 준 부분이기도 했다.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한 민망한 상황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이 있어서이고, 두 번째는 이상적인 성장에 관한 나름의 철학이 있어서다.


예전에 나는 독자 투표로 결선 진출이 가늠되는 한 웹소설 공모전에서 본선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지인과 가족, 블로그, 심지어 내가 즐기던 게임의 커뮤니티까지 찾아가서 열심히 내 소설을 홍보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예상했겠지만 실제로 도움을 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나는 결선에서 떨어졌다.


어린 날의 내가 당시에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덧없이 흘러간 모르는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가까운 지인들도 내 작품을 외면했을 때는 배신감 같은 것마저 들어 괜히 사람들을 모난 눈으로 쳐다보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관심도 없는 일에 큰 지지를 보내주기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꾸준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유튜브를 하겠다고 다른 플랫폼의 독자들에게 구독을 부탁했는데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 구독자가 열 명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웹소설 공모전이 몇몇 지인들과 정말로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읍소한 것이라면 그때는 경우가 더 심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무슨 새로운 채널을 개척하더라도 절대로 지인이나 독자들에게 구독 같은 것을 부탁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읽겠다고 기꺼이 구독을 눌러준 독자들조차도 엉뚱한 짓을 하게 되면 외면하는 게 이 세계의 이치다. 그런데 내가 단지 동생이라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덜컥 소개했다가 그걸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면 괜스레 나도 민망해지고, 소개해준 지인들까지 머쓱해지는 불쾌한 상황이 생겨버린다.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주인공 장 바티스트를 천사라고 칭송하지만 실은 그의 향수를 뿌린 손수건에 열광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지인 찬스'가 내 발전에 크게 유익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알게 됐지만(어떤 결과가 정해져 있어서 한 번만 승부를 보면 되는 게임은 예외일 수 있다), 성장을 위해서도 지인 찬스가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못 된다는 것도 안다. 적어도 글쓰기에 관한 한 정말로 나의 글에 관심이 있어서 들여다볼 사람이 아니라면 때로 그것은 내가 정말로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눈가리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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