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닮은 아빠 이야기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하나 떠올리니, 릴레이처럼 하나 둘 더 떠오르기 시작한다.
청소년기에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완전히 저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래서 정말로 다 잊은 듯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어느 정도 자유해진 나는,
다시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싶나 보다.
가난하지만 친근했던-, 그런 기억들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캄캄한 밤이 되기 전까지 절대 누워 주무시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시고 언제나 앉아서 조시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늘 그렇듯 소리를 치며, 그렇게 졸 거면 누워 주무시라고 성을 내셨지만,
할아버지는 되려 화를 내며, 졸리지 않다 하셨다.
하지만, 어린 내가 봐도 할아버지는 분명 졸고 계셨다.
워낙 부지런해 집에서 쉬는 법이 없으셨던 할아버지는,
매일 폐지를 주으러 리어카를 끌고 나가는 건 기본이셨고,
집에 돌아와 야채를 다듬고 시장에 나가 할머니 옆에 앉아 또 야채를 다듬고,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다시 폐지를 주으셨다.
그러니 졸음과 피곤은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아-.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믹스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씩 드시던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이제야 할아버지의 믹스커피를 떠올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릴 때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 할아버지는 누워 주무시지 않을까?
성인이 되고서는, 이런 생각도 해보곤 했다.
내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뭔가 아깝고 공허해서 잠들지 못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도 그런 건가?
하지만 금세 따라오는, '아- 나처럼 이렇게 가벼운 이유가 아니었을 거야.'
할아버지에 대해 잊고 살았지만, 어느새 다시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빠 때문에.
아빠는 할아버지와 전혀 부모 자식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다른 모습이지만,
피를 속일 수 없을 만큼 할아버지와 같이 행동하신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서도 건강을 챙긴다며 좋아하는 조기축구를 뛰고,
그러고서 집에 와 아침을 먹고 출근하여 집에 오면 밤 10시는 기본.
하지만 텔레비전 앞에서 버티고 또 버틴다.
조금 더 자란 내가, 빨리 씻고 주무시라 소리를 쳐도
캄캄한 밤 잠들기 직전 시간이 되기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버티고, 버티고, 버티는 것.
떨어지는 고개의 무게를 버티는 것처럼,
안간힘을 쓰며 그 무게를 버텨내는 것.
할아버지의 졸음은, 삶의 무게. 그것이었을까.
우리 온 가족이 얹힌, 삶의 무게.
그리고 우리 아빠의 졸음도,
네 자식과 한 명의 아내가 얹힌, 그 무거운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