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갔다 빈손으로 나왔다

by 슥슥


배달이신가요?




"네. 배달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려고 힘들게 담았는걸요.) 아니나 다를까 10분 전, 나는 동네의 마트에서 혼자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거렸다. 배달할 수 있는 가격 조건인 3만 원을 넘기기 위해서였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요즘에 3만 원이란 기준은 얼핏 도달하기 쉬운 가격대로 보인다. 그러나 살림과 요리에 서툰 초보 자취생에겐 따져볼 게 많은, 까다로운 미션에 가깝다.






우선, 효율성을 고려해야 한다. 갑자기 웬 효율성이냐 되묻는다면, 음식 쓰레기로 들어갈 재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고 답하고 싶다. 자취방 냉장고 속에 있는 식자재를 염두에 두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메뉴를 떠올리며 장을 보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독립 직후 나만을 위한 장 보기에 한껏 들떴을 땐 아무렇게나 먹고 싶은 데로 사다가 금세 질려 음식 쓰레기 봉지만 배불린 경험이 많았다. 오늘은 된장찌개였는데, 내일은 크림 파스타 이런 식으로 계획 없이 장을 보다 보면 꼭 버려야 할 식료품이 생기곤 했다. 특히 소스를 살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토스트를 한답시고 구매한 제일 작은 크기의 케첩과 마요네즈, 그리고 이 정도는 먹겠지 싶어 산 110g의 오리엔탈 드레싱을 결국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버린 후로는 웬만하면 소스가 필요 없는 메뉴를 생각하게 되었다.






'주식(유가증권 아님)'과 '간식'의 적당한 비율도 따져본다. 이 또한 쓰린 경험에 의해 만들어졌다. 불과 3년 전, 좋아하는 떡볶이와 과자로 냉장고를 채우다 '콜레스테롤 수치 주의'와 '충치'라는 다소 부끄럽고 충격적인 건강검진 소견서를 건네받았기 때문이다. 건강에 엘로카드가 주어지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마트에서 '주식'의 재료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다. 한 끼 식사가 될 만한 식자재를 80% 채우고 나면 나머지 20%는 애정하는 간식을 기분 좋게 고르는 것. 이 정도가 건강을 위해 나와 타협한 비율이다.






여러 실수와 착오 끝에 마련한 기준을 근거로 장을 보다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가 있다. 바나나, 고구마, 양파, 호박, 계란 그리고 두부. 아침 요기로 유용한 바나나와 고구마를 제외하면 어떤 요리를 하든 거의 빠지지 않는 필수 식재료들이다. 이들은 가격대가 (다른 것에 비해) 나름 저렴한 편이지만 손수 들어야 할 장바구니에 담기엔 제법 묵직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마침 떨어졌던 터라 그것들을 한 데 담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쟁여두는 취향이 아니라 어떤 걸 사도 묶음보다는 낱개로 골랐음에도 손에선 이미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기준치 3만 원을 넘기기엔 한참 모자란 상황. 고민이 계속될 땐 담는 수단을 카트로 바꿔 무게라도 덜면 좋을 텐데 불필요한 쇼핑이 우려되어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낑낑대며 2층의 마트를 한참 휘젓다 계산대 앞에 선 것이었다.






고심해 고른 식재료들이 배달 상자에 담기는 모습을 보면서 몰래 히죽 웃고 말았다. 귀찮다는 이유로 사 먹고, 양 많고 비싼데도 불구하고 비마트 배달을 이용했던 예전의 나와 멀어졌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냉동식품보다는 냉장 식품 그중에서도 야채 코너에 유독 오래 머무르고 비싼 가격에 놀라도 제철 과일 한두 개는 장바구니에 꼭 넣는 나는 본가에 있을 땐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밥 짓기'가 전부였던 사람이 어설프게나마 자신에게 끼니를 제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 3년. 집을 나와 시간만 흘려보낸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들곤 했는데 이 질문에 답할 작은 힌트를 얻은 기분이었다.









10% 할인 효과가 있는 지역 화폐로 무사히 결제까지 마치고 빈손으로 마트를 나오며 생각했다.





자, 다음 목적지는 다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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