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3년 차 자취생이면서 살림 좀 해본 사람처럼 행동하는 내가 낯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밀대 걸레부터 붙잡고 바닥을 쓴다던가, 외출하기 전에 바깥으로 내놓을 만한 쓰레기가 없는지 꼭 둘러본다던가, 아니면 하늘이 쨍하게 맑은 휴일엔 세탁기 전원부터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던가 하는 것들. 너무 사소하고 당연해서 할 일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집안일을 몸에 밴 듯하고 있을 때 그 자연스러움에 나조차 놀라곤 한다.
제대로 치우고는 살겠니
집 나오기 한 달 전, 엄마의 입에서 자주 나온 말이다. 다 큰 자식을 믿지 못하는 엄마의 우려 섞인 불신이 내심 서운하면서도 사실 나도 미심쩍긴 마찬가지였다.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살림에 관해선 요리도, 정돈도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 가지런히 수저만 놓을 줄 알았지,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몇 개 되지 않았고 옷도 이리저리 휘둘러놓으며 코디할 줄만 알았지, 어떻게 더 예쁘게 개킬 수 있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본가에서의 집안일은 내게 보이지 않는 영역이었다. 언제나 깨끗하고, 정돈되고, 건강한 밥상이 준비된 집에선 까막눈이어도 충분히 살 수 있었으니까.
준비되지 않은 자취생에게 닥쳐올 현실은 불 보듯 뻔했다. 새롭고 낯선 상황에 당황하며 어설프게 대응하거나 엉망으로 끝이 나는 상황이 쉼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숱한 시행착오 사이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고구마에 뿌리가 나는데 먹어도 되는 건지, 콩나물을 무칠 때 찬물로 헹궈도 되는 건지, 빨래 세제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쿰쿰한 하수구 냄새는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등등. 사소한 요리 레시피부터 집안의 보수 하자 문제까지 도움을 요청할 건 끝도 없이 나왔다. 나의 질문은 낮과 밤이 없었고 범위도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그럼에도 마치 옆에 답안지가 있는 것처럼 엄마의 입에선 해결책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입에 떠먹여 주는 해답을 꿀떡꿀떡 받아먹으면서 자주 얼굴이 벌게졌다. 물리적 독립은 했으나 온전한 자립은 아직 멀었음을 실감해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딱 삼 년 차 자취생인 나는 풍월은커녕 겨우 살림 초보 딱지를 뗀 수준이다. 내게 집안일은 여전히 어렵고, 눈앞을 얼쩡대는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 때문에 나는 독립을 후회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누군가의 노동, 누군가의 소중한 노고를 덕분에 매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치우기 전까진 몰랐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주 빠지고,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먼지가 쌓이는지. 말끔한 바닥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로 분주해야 하는지 바닥을 직접 쓸어보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이제야 뒤늦게 알아간다. 수북이 쌓인 하루의 흔적들을 쓸고 닦고 버리면서.
그리고 기꺼이 집안일을 한다.
5명 식구들의 흔적을 홀로 감내했던 한 사람의 수고에 매일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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