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내 것 같을 때

by 슥슥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다. 그대로 세네 걸음만 직진하면 매일 잠들고 눈 뜨는 싱글 침대가 가로로 놓여있다. 그 옆에는 모니터와 노트북을 간신히 수용하는 자그마한 책상이 있다. 거기서 뒤돌아 다시 서너 보 정도 걸으면 코인 노래방 크기의 화장실이 나온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화장실의 위치는 마치 직삼각형의 꼭짓점 같다. 각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걸음은 겨우 다섯 보 정도다. 6평 원룸의 생활 반경은 이토록 협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공간에 자주 만족한다. 오늘은 그 이유에 관해 기록해보려 한다. 매우 사소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취의 안온한 순간에 대해서.





자취를 하기 전 친구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자취를 하고 싶어?" 그때 나는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자취를 한 후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자취해서 뭐가 가장 좋아?" 자유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불쑥 이런 답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조용해서. 집이 조용해서 너무 좋아"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한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다.





방 3개에 여섯 식구가 모인 집. 삼대가 모여있는 본가에서는 소리를 끄고 켤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와,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동생과 방을 쓰던 나는 ‘고요’를 모르고 자랐다. 그 대신 드라마 소리와 게임 소리, 숨소리와 잠꼬대,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를 지나치게 공유하며 컸다. 각종 소음이 넘실대는 방에서 어린 나는 적막을 독점할 날을 자주 상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친구들과 은밀한 통화를 하고, 학교에서 느낀 이상하고 격렬한 감정에 대해 편히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상은 쉽게 현실이 되지 못했다. 아니 현실이 되도록 애쓰지 않았다. 소리가 넘치는 집엔 소란의 크기만큼 익숙한 아늑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안함에 취해 본가에 오래 머물렀다. 그런 내가 충동적으로 자취를 결정한 건 허무하게도 아주 작은 마찰이었다. 잠 한숨 자고 나면 까먹을 사소한 말다툼이 계기였다. 가족과 약간의 언쟁이 있던 당시, 나는 주문을 외듯 이렇게 속삭였던 것 같다.



혼자 있고 싶다



그 뒤로는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유튜브로 매일 부동산 계약을 공부하고 중개인과 수십 개의 원룸을 보러 다녔다. 돌이켜보면 나의 독립은 충동이라기보다는 분출에 가까웠다. '혼자 있고 싶다'라는 욕망이 튕겨져 나오는 게 아니라 쌓여 있던 물이 흘러넘치듯 줄줄 새어 나오는 느낌이었으니까. 정말이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앞만 보고 집을 구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 방을 갖게 된 날, 가족을 돌려보내고 혼자 맞이한 적막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부러 TV와 시계조차 놓지 않아 더 숨막혔던 그 차분한 기운을 말이다.





어엿한 3년 차 자취인이 된 나는 이제 ‘무음 모드’를 스스로 처방할 수 있다. 밖에서 사람과 소음에 뒤엉켜있다가도 집에만 오면 모든 기기를 끄고 조용한 6평 방 안을 둘러볼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오래 걸린 만큼 고요를 느리게 음미할 줄 알게 되었다. 작은 삼각형 안에서 과분한 적막을 홀로 누릴 수 있을 때, 그 무음 속에서 마음의 파동이 잠잠해질 때 나는 내 삶이 내 것 같다.





Image by Pixabay





desert-g95c0a10e1_640.jpg Image by Pixabay


keyword
이전 05화마트에 갔다 빈손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