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다.
눈앞에 닥친 칠흑 같은 어둠에 순간 온몸이 정지했다. 허둥대는 손길로 일단 샤워기부터 껐다. 물줄기는 멈췄지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공간에서 끔뻑 끔뻑 눈만 뜨고 있었다. 혼자 있는 자취집 화장실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정전인가’ 그러나 환풍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불만 꺼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로 심장이 더 쿵쾅거리며 오만가지 상상이 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 건 이거였다.
‘누군가 들어와 나를 나오게 하려고 불을 끈 것은 아닐까. 밖에 괴한이 있으면 어쩌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을 상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급한 마음에 더듬거리면서 얼른 화장실 문을 잠갔다.
‘이제 어쩐다’
밖에 누가 있을지, 아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발가벗은 채 이대로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문에 귀를 갖다 대 보았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에이씨, 하나도 안 들리네’ 순간 짜증이 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문 틈 사이로 방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방 형광등도 켜져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정전은 아니었다. 불이 꺼진 순간 세운 가설 중 하나가 지워졌다. 정말 누가 들어온건가.
하지만 이상했다. 누군가가 침입한 거라면 이토록 조용할 수가 있나. 여기는 옆방의 볼일 보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방음이 취약한 곳인데. 아무리 샤워기를 틀어놨어도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나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닫으면 자동으로 잠가지는 새시 창문은 샤워 전에 꼭꼭 닫아놓았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침입은 아닌 것 같은데…’ 내 상상으로 만든 아찔한 상황까지 소거하고 나니, 남은 건 이제 하나였다.
확률로 봐도 99% 였다. 하지만 프로 걱정러답게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별 수 없었다. 샤워기를 무기처럼 손에 들었다. 눈앞에 사람이 있을 경우 머리라도 한방 칠 기세였다. 다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벌컥’ 문을 열었다.
다
행
히
‘혹시나’는 없었다. 모든 것이 고요히 제 자리를 지킨 빈 방이 보였다. 후 우우. 나도 모르게 긴 숨이 나왔다. 샤워기 헤드를 단단히 잡고 있던 손에 힘도 풀었다. 고작 전등 하나 나간 것에 어디까지 상상한 것인지… 그제야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마치 스릴러 영화의 여자 주인공처럼 공포에 질려버린 내가 우스우면서도 아주 약간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어두운 골목길이 무서워 남동생이 마중 나오길 기다렸던 3년 전의 대왕 쫄보가 샤워기 헤드를 무기 삼아 위급상황을 모면하려 했다니. 나 조차도 몰랐던 배짱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내 자취 생활이 남들보다 유독 느렸던 건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부족한 돈만큼이나 내 행동을 억압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었다. 나 혼자 밥이나 해 먹고살까, 밤에 무서운데 골목길을 혼자 들어갈 수 있을까, 나가서 돈만 더 깨지는 거 아닌가, 이상한 세입자와 다투면 어쩌지, 창문으로 누가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등등 집을 알아보기도 전에 걱정이 끝없이 뻗어나갔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혼자 사는 여자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된 것처럼 뉴스에서나 나올법한 최악의 상상을 매일 했었다. 그때 내 생각의 추는 분명 치우쳐있었다. 모르는 세계에 관해선 유독 부정적인 이미지만 세밀히 그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나와보니, 이 모든 우려가 허무할 정도로 나의 첫 자취생활은 행복했다. 백 점 만점의 백이십 점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시행착오는 많았다. 흰색 옷과 검은색 옷을 같이 빨다 새로 산 흰 옷이 회색이 되기도 하고, 호기롭게 가마솥에 밥을 하다 일주일 내내 설 익은 밥만 먹기도 했다. 그런데도, 좋았다. 초보 자취생으로서 모든 게 서툴고 미숙하기만 했는데도 왜 그때를 떠올리면 좋기만 한 걸까.
아마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살지 않았다면 내가 이토록 고요한 환경에 안정을 느끼는 사람인지 몰랐을 거고(아무 소리 없이 종일 있어도 괜찮을 정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따분함 없이 빼곡히 채울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을 거다. 독립의 경험 덕분에 읽고 쓰기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고, 고독의 시간 덕분에 포장할 필요 없는 나의 담백한 취향을 알 수 있었다. 본가에서 머리로만 만들어낸 두려움 속에는 없던 나였다.
‘혼자 사니까 좋아?’라는 질문에 내가 흔쾌히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자취의 삶은 곧,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셈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쌓인 데이터의 진짜 힘은 두려움의 무게를 덜어준다는 데 있다. 낯선 세계와 마주할 때 무턱대고 걱정부터하는 대신 일단 부딪쳐볼만한지 가늠하게 해준다. 샤워기 헤드를 꼭 쥐고 문을 벌컥 열었던 어제의 나처럼 실제로 맞닥뜨리면 별 거 아닌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