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크기의 도마를 펼친다. 언제나 요리의 시작은 이것이다. 하지만 도마를 놓기 전에 준비단계 하나를 거쳐야 한다.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수저 꽂이와 먹다 남은 몇 가지 간식들, 그리고 생수병을 싱크대 뒤편 책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도마 하나를 펼치기 위해 부랴부랴 물품 옮기기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원룸의 싱크대는 가용 면적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이다. 식기 건조대와 1구 인덕션만으로 이미 면적의 절반 이상이 사라져 있다. 남아있는 건 A3 용지 크기의 작은 공간. 내게 허용된 이 조리 영역을 사수하려면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물건부터 빼내야 한다. 도마를 펼치고 난 후부터 해야 할 일은 ‘재료 소분’이다. 당일 먹을 양만 똑 떼어 도마 위에 남겨두는 일 말이다. 식재료 원래 크기의 4분의 1 또는 3분의 1조각 정도면 충분하다. 이마저도 조리 공간 확보에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이렇게 좁디좁은 장소에서 재료를 씻고, 칼질을 하고, 무언가를 익힌다. 비효율적이고 성가신 일이지만, 이 자그마한 싱크대 앞에서 놀랍게도 약간의 긍지를 느낀다. 작은 완성의 기쁨을 느낀다. 오늘은 그 이유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잘 살고 있는 기분’
겨우 찌개 하나를 만들어놓고 느끼는 감정이다. 과잉된 것을 나도 안다. 이 호들갑스러운 감정의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고백을 해야 한다. 내 손으로 나를 먹일 밥을 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말이다. 35살에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따박따박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던 세월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돌이켜보면, 어떤 두려움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망설이는 사람 특유의 고질적 두려움이었다. 무엇을 시작한다는 건 알 수 없는 변수에 노출되는 일 같았다.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할 낯선 상황을 구체적이면서도 비관적으로 짐작한 탓이었다. 비단 독립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부분에서조차 생소해서 대응하기 어려워 보인다면 피할 궁리부터 했다. 요리도 그중 하나였다.
분명 잘해보고자 하는 몇 차례의 시도들이 있었다. 잘 다듬어진 재료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본가에선 더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밥이나 라면 정도가 아니라 메뉴로 칭할 수 있는 음식에 다가서면 어김없이 탄식이 흘러나왔다. 초보가 하기 좋다고 추천받았던 카레는 어느새 흥건한 카레국이 되어 있었고, 라면만큼이나 수월하다던 크림파스타는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국수로 그릇에 올려지기 일쑤였다. 살짝 애매하거나 왠지 모르게 과잉된 맛의 연속이었다. 요식업에 몸담았던 오빠와 30년 살림 장인 엄마의 조언을 듣고도 그랬다. 엄마는 할수록 느는 게 요리라고 기운을 북돋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란 인간은 빠른 판단력이 필요한 영역에는 아무래도 취약하다는 것을. 이건 삼세번 낙방 끝에 운전면허에 붙었을 때도 동일하게 느낀 바 있던 자각이었다.
사람이 약점에 대응하는 방식은 보통 두 가지다. 극복하거나 포기하거나. 이미 극복해야 할 약점이 차고 넘치던 나는 요리만큼은 별 고민 없이 후자를 택했다. 도저히 흥미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손만 거치면 볼품 없어지는 식재료들을 마주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만드는 절차엔 반드시 요리사의 재량이 필요했다. 불의 세기에 따라, 넣은 양념에 따라, 배합된 정도에 따라 결과물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요리란 변수로 굴러가는 세계 같았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세계였던 셈이다.
‘뚝딱’이란 말이 왜 요리 앞에 붙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절을 거쳐 어느덧 된장찌개를 ‘뚝딱’ 만드는 3년 차 자취인이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요리를 대하는 나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이다. 이제는 예기치 않은 실수를 걱정하기보다 얼렁뚱땅 완성하는 기쁨에 더 집중할 줄 안다. 엉뚱한 재료를 넣어보고, 약간씩 더 졸여보고, 부족하게 간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내 입맛도 반가워할 줄 안다. 변수가 있는 곳엔 언제나 즉흥의 재미도 있음을 무언가를 팔팔 끓이면서 깨닫는 것이다. 훗날 삶에 기본이 될지도 모를 어떤 태도를 나는 오늘도 비좁은 싱크대 앞에서 기분 좋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