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고 울기만 했다

by 슥슥




밥은 먹었어?


엄마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건 통화였다. 그런데도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던 건 엉뚱하게도 책 때문이었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다가 별안간 감정이 격렬해졌다. 내 마음이 요동친 부분은 부모님의 죽음을 다룬 에피소드였다. 병으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차례로 떠나보낸 그녀는 그리움과 상실감이 어떻게 자기 옆에 머무는지 구체적인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냥 견딜 수가 없다. 일주일 전, 내가 대학에 있을 때 어머니가 보내왔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때는 내가 특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 정말 상냥하고 어머니다운 그 편지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살면서 혼란스럽거나 우울하거나 막막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밤중에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깊고 한결같던 이해가 떠올랐다.
(…) 나는 편지 봉투를 움켜쥐고 앉아서 흐느껴 울었다. 너무 격렬해서 몸이 다 아픈 울음이었다.
ㅡ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이 대목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슬픔을 몰입해 읽다 상상이 나의 상황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이입이 아니라 거의 동화된 수준에 가까웠다. 언젠가 내가 견뎌야 할 상실을 스스로 코앞으로 끌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급한 과몰입이라는 걸 알아도 책을 잠시 덮고 눈물을 훔치며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찾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슬픔을 다독일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목소리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엄마는 평화로웠던 저녁에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대뜸 전화해 말 하나 없이 훌쩍거리는 딸 앞에서 엄마는 잠시 조용해졌다. 그 이상한 공백을 깨야 하는 건 아무래도 나였다. “엄마, 나 왜 이러지. 책을 읽다 너무 슬퍼졌어.” 그러자 수화기 건너편에선 질문과 걱정의 말이 연이어 나왔다. “무슨 책이었는데? … 책도 좀 좋은 걸로 봐야지. 재밌는 걸로. 너 혼자 있어서 그래. ”




슬퍼하는 와중에 마지막 문장이 또 신경이 쓰였다. 엄마로부터 익히 들어온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말하거나 격한 감정 때문에 힘들다 고백하면 엄마는 여러 원인을 추정하다 막바지엔 늘 이 말을 덧붙였다. ‘너 혼자 있어서 그래.’ 그러면 나는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발끈하곤 했다. ‘아, 또 그 소리야.’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코를 훌쩍이며 교정을 하고 있었다. 혼자여서가 아니라 그저 책 내용이 슬픈 거고, 지금 나의 감정과 내가 독립한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말이다.




엄마의 마지막 말을 따박따박 정정하다 보면 늘 같은 질문을 맴돌게 된다. 나는 왜 저 문장에 반응하는 것일까. 나를 찌르는 감정이 대체 무엇일까. 처음엔 나의 독립 상태를 마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 여겨서인 줄 알았다. 함께여야 완전하다는 추궁처럼 들렸으니까. 나는 이 지적이 타당하지 않다고 믿었다. 여기엔 설움의 역사가 있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동생과 방을 공유하던 나에게 ‘내 공간’이란 염원과 다르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를 몰라도 그녀가 말한 ‘작은 방’의 필요를 몸으로 통감하며 지낸 셈이었다. 사적 영역에 대한 결핍감이 몸에 마디마디 박혀있던 내가 늦게나마 자력으로 얻은 공간인데, 이를 문제시 삼는다는 게 서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심정을 아무리 고백해도 엄마의 익숙한 맺음말은 오늘처럼 생각지 않은 순간에 튀어나왔다.




도돌이표 대화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건 새로운 질문뿐. 주어를 바꿔보았다. 엄마는 왜 저 문장을 고집하는 것일까. 엄마를 찌르는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타인의 마음 안쪽을 가늠해 보니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 하나가 짐작되었다. 그건 일종의 상실감이었다. 나는 평소 엄마와 나의 모습이 사람인(人)의 한자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대화와 갈등으로 완성한 관계의 모양이었다. 우리는 어느덧 익숙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지탱하는 모녀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친밀한 결속을 풀고 싶어 하던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가까이서 본 희생과 돌봄은 갈수록 부담스러워졌고, 독립은 생애 주기의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엄마에게 기대던 몸을 일으켜 한 발짝 거리를 두었다. 일대일의 모양이 된 것이다. 분리되면서 마주하는 감정은 각자가 해결해야 할 몫이었다. 나는 해방감을, 아마도 엄마는 상실감을 느꼈을 테지만 그마저도 단계라 여겼다.




어쩌면 엄마는 여전히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한 몸처럼 붙어서 일상을 공유하던 ‘모녀’가 이제는 서로에게 근황을 전달해야 하는 ‘모와 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낯설어하면서 말이다. ‘너 혼자 있어서 그래’ 어떤 때는 이 말이 엄마 자신에게 하는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미 멀어진 자식을 보며 적적해진 스스로에게 내뱉는 혼잣말. 나를 찌르던 감정은 이런 상상 속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반박하면서도 늘 겸연쩍은 기분을 느끼곤 했으니까.




책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최근 근황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나의 눈물도 자연스레 잠잠해졌다. 언제 울었냐는 듯 농담까지 얹으며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불쑥 엄마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 나 다이어리 샀어.” 그러면서 영상 통화로 바꿔 노란색의 다이어리를 자랑하듯 보여줬다. 한 장 한 장 내지를 넘기면서 앞으로 무엇을 쓸지 설명하는 목소리엔 기대감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 열띤 마음이 반가워 잠자코 구경하다 문득 빈 페이지에 미리 써둔 글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냐고 묻자 엄마는 말없이 화면을 종이 쪽으로 가까이 댔다. 거기엔 딱 두 줄의 문구가 있었다.




축/생/일
우리 딸!




새 다이어리를 받자마자 케이크 모양까지 직접 그려 넣으며 가족의 생일부터 적는 엄마의 뒷모습을 상상하니 다시 눈가가 시큰해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엄마에게 모녀란,

언제나 변함없이 人의 모양 그대로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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