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이 들어온 순간, 계좌의 앞자리가 달라졌다. 깔끔하고 설레는 숫자 1로. 생전 처음 보는 숫자였다. 1억이 넘는 돈이라니.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1억은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자산을 본격적으로 키워갈 수 있는 유의미한 종잣돈이라고. 이제는 재테크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첫 문장, 첫 단어에 언급했듯이 나는 현재 퇴사를 한 상태다. 한번 상상을 해보았다. 1억이란 자산으로 영끌이든 갭투자든 갖은 수를 써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상상. 어디가 되었든 분명 원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자랑할 것이다. 달콤했다. 그러나 뒤이어 감당해야 할 사실 하나도 같이 떠올랐다. 한층 높아진 고정비 때문에 내 몸이 현재 하는 일에 완전히 묶이는 상상. 몇 년간은 꼼짝하지 못한 채, 재테크 공부를 하며 하던 일에 열을 올려야 할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아찔했다. 고개가 절로 흔들릴 만큼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해결해야 할 문제의 순서를 이제는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지금의 자취집이 협소하고 열악하다는 건 감당할 수 있었다. 아니 살아보니 오히려 좁은 건 나에게 큰 결격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런데 8년간 했던 업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가 어려웠다. 괴롭히는 직장 상사도 없었고, 30대 직장인 평균 수준의 연봉과 칼 같은 퇴근을 보장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고요한 정원인데도 평화를 느낄 수 없었다. 이상하게 회사만 가면 숨이 죽고 말라갔으니까. 아무리 안정이란 물을 줘도 ‘성장이 멈춘 식물’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보았다. 이제는 자취인으로서가 아니라 직업인이 되어서 풀어야 할 문제를 짚어보기로 한 것이다. 진로 고민마저 왜 이리 느린 걸까 자책도 많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회와 한탄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건 3년 전 자취를 시작하며 이미 뼈저리게 느낀 바였다. 결국 그때처럼 다시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기어코 회사 밖에서 생존한 이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스무 권 가까이 되는 책을 들춰보며 조금씩 해야 할 목록들을 적었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의 평균을 계산해 보고 4대 보험은 퇴사 후 어떻게 처리되는지,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회사를 나와 해보고 싶은 게 대체 무엇인지도.
그때의 기록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재테크를 할 수 없는 시간 부자의 삶으로 말이다. 이제 막 3개월이 지났다. 퇴사 직후엔 급성 불안 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요즘엔 6평 방 원룸에서 무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돈독이 올라 온라인 부업에 열을 올렸던 2년 전 월세살이 자취생일 땐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느긋한 모습이다. 예산으로 책정한 계좌의 잔고는 조금씩 줄고 있고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땐 종종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채워지는 감각’을 느낀다. 그간 읽고 쓰기에만 열을 올렸을 뿐인데도 그렇다. 다음 달부터는 점찍어둔 디자인 수업을 배울 예정이고, 올해는 적어둔 리스트들만 하나씩 지워나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쯤 되니 문득 궁금해진다. 이미 사회적 대열에서 너무나도 뒤처진 지각생이 걷기를 멈추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그 사람에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해야 할까. 낙오자? 패배자? 조급함만 가득했던 3년 전의 나라면 아마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인 책임과 완전히 거리를 두자 곧게 뻗어 있던 트랙이 사라지고 각자의 화단이 보였다. 지금껏 나는 만개한 꽃이 가득한 타인의 화단을 너무 오래 구경한 게 아니었을까. 내 발밑의 서서히 망울지는 꽃봉오리들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퇴사 에세이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책을 읽다가 이 문구를 한동안 넋 놓고 보았던 적이 있다.
내가 느리다고 생각했던 그 속도가 내가 지루하다고 여겼던 그 속도가 사실은 나를 안전하게 해 줬을 수도 있다.
발아래 화단을 다시 매만지려 하던 나에게 물줄기 같은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이 공간이 앞으로 풍성해질지 아니면 척박해질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더 살뜰히 살펴야겠다는, 애틋한 마음만 들뿐이다.
지각생이 아니라 내 삶의 가드너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