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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Jul 31. 2018

[백인보②] 자기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 되기

1. 일을 하고 싶어서 잠이 일찍 깨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사주풀이가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친구들과 무료 앱으로 돌려본 2018년도 신년맞이 운세는 내가 올해 무려 사교계의 여왕(!)이 된다는 점괘를 내놓았었다. 나는 그런 점괘가 나왔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가, 얼마 전 일기를 뒤적이다가 어느 정도는 맞는 점괘를 받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상반기,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많이, 정말 많이 만났었던 것이다. (물론 사교계의 여왕보다는 좌충우돌 꾸러기였지만..) 직장을 옮기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면서 아주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상반기에 400명 정도의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일률적으로 계산한다면 하루에 2~3명씩의 뉴페이스들을 본 셈이다. 정년을 앞둔 교육계 원로 남성분부터 법조인을 꿈꾸는 열 아홉 소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만남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백 명은 백 가지의 모양으로, 천 명은 천 가지의 모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이는 일이 너무 즐겁고 재밌어서 일찍 잠이 깬다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이라는 TED 강연의 조회수가 70만회에 달하는 현실에서 그의 존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월요일이 싫어서 토요일 밤부터 배가 아픈 친구의 전화를 끊으며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이 힘들고 고되다고 했다. 힘들고 고된 것을 즐기기 위해 새벽에 잠을 깬다는 것("하아하아.. 오늘은...읏..하아.. 어떤 고통을 받을까?")은 너무나 변태적이었으므로 그나마 해볼 수 있는 추론은 이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장'으로부터 끊임없이 동력을 얻는 것 같았다.


2. 성장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있을까


   성장은 그 자체로 보상이다. 더 나은 나, 더 괜찮은 사람인 나, 더 좋은 나는 아주 근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힘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그래서 폭력과 사기와 같이 불법적인 요소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방향이 틀렸지만, 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욕망 자체를 제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할 일의 방향성을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자율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의사결정권자가 정해놓은 일의 매뉴얼에 따라 업무의 통일성을 가장 중요시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행정적 절차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하는 일은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잡무'가 된다. 최근에 내가 가장 고통을 받았던 업무는 150명 가량의 강좌 수강 내용의 시간, 장소, 출석률을 정리하고 본인 확인을 거치는 작업이었다. 곳곳에 흩어진 이들의 전화번호를 손으로 하나하나 입력하면서 키보드 간격에도 쉽게 화를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왜 키보드 1 옆에는 2가 있는가 등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마구 떠올랐다.) 이게 과연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이 내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3. 성장은 무엇으로 하는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조건을 개선시켜 나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맥락을 모르는 일은 맥락을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이다. 내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을 규정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앞서 나에게 1650+a의 타자를 요구했던 그 단순작업은 사실 개별 학습자에게 최적화된 맞춤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내가 그 고통의 시간을 보냄으로써,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고 듣는 자율성을 경험하고 아주 조금이라도 지적으로 더 성숙했을 것이다. 정신승리라고 해도 좋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과 관련된 것인지 스스로 설명함으로써, 나는 일을 한결 괴로울 수 있었심지어는 약간의 보람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맥락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교육과정의 맞춤화에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이 귀찮은 업무를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보다는 기계에게 맡기는 편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또 강좌추천도 빅데이터가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단순한 생각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조직밖에서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를 안내하기도 했다. 에듀테크라는 분야가 이미 생겨나기 시작했고, 몇몇 성공사례가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나는 강연을 좋아한다. 그것을 보면 하루 이틀은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동기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강연을 '자주' 보는 이유는, 그런 파이팅 넘치는 동기화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기 떄문이다. 사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향상심은 비장한 각오보다 좋은 일상에서 온다. 예컨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서 강한 체력을 갖추고 싶다는 비장한 각오는 번번이 실패했었다. 내가 비로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운동 종목을 시도해보고 그 중에서 내게 가장 맞는 것을 선택하고 삶의 루틴에 포함시킨 이후였다. 수영, 요가, 방송댄스, 달리기, 폴댄스, 헬스... 를 거쳐 주짓수에 안착했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습관적으로 체육관을 찾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체지방이 32퍼에선트에서 19퍼센트까지 떨어졌었고 (물론 지금은 잘 먹어서 20퍼센트는 넘어섰다^^), 면역력이 강해졌다. 물론 자잘한 타박상이나 찰과상은 늘 달고 다녔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불타는 의지로 일찍 기상했던 것은 열흘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침에 간단한 퀴즈를 푸는 짝꿍을 구하고 서로 모닝콜을 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난 뒤에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전까지 내 스스로 의지가 약해서 그래, 라고 몰아세웠던 것이 사실은 습관과 환경의 문제였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어차피 우리의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 사이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흔치 않다. 삶에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엔트로피라는 물리법칙을 "가만히 놔두면 책상은 지저분해지고, 수염은 마구자라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관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보다 그 힘으로 엔트로피의 세계를 씩씩하게 건너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좋은 일상을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싶다.


4. 마치며

나는 쫄보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의 일상을 박차고 나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조금씩 나빠지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이 세상에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기 싫은 일이 분 단위로 쏟아질 때, 불평하는 것보다 나은 대처방안을 찾고 싶어한다. 그것이 환경을 조절하는 능력과 어떤 마음을 먹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은 여전히 탐색 중이다. 그래도 일이 하고 싶어서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내가 탐색하는 방법도 세상에 있을 것이다. 결심 말고 습관으로 그것에 가까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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