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eth Nov 27. 2022

브런치 작가가 된 썰

근데 이제 반성문인 셈인...

그러니까 그날은 2021년 12월 13일이었다.


몇 해 전 겨울, 혼자 제주에서 새해를 맞으면서 있었던 좋은 기억 때문에 연말에는 꼭 혼자 제주를 가는 것이 나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21년 12월에는 조금 일찍 제주를 갔었다. 가을 동안의 일들에 지쳐있기도 했고, 이번에는 새해 말고 생일을 기념해보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일이 며칠 지난 12월 10, 좋아하는 제주에서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며 브런치에 두 번째 도전장을 냈다.

2021년 12월 10일. 생일을 기념하며 갔던 제주에서 두 번째 브런치 작가 도전을 했었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두 번째 도전에 큰 기대는 없었다. 기대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저 제주에 온 김에 제주를 사랑하게 됐던 시작에 대해 썼던 글을 정리해 제출했을 뿐이었다. 노트북 배터리 충전기를 들고 오지 않는 바람에 전원이 꺼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신청서를 냈었다. 신청 글을 제출한 다음에는 첫 번째 도전 때와는 다르게 어쩐지 기분이 산뜻하긴 했었던 것 같다.(사실은 이제 와서 부려보는 귀여운 허세다. 이번에는 제발 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로 제출 버튼을 눌렀었다.) 그리고 12월 13일. 제주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생기를 되찾아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각지도 못한 메일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메일의 첫 문장이었다. 아-. 사랑하는 제주에서 쓴, 제주에 대한 열렬한 마음을 담은 글로 얻은 "작가"라는 칭호라니. 주는 정말이지 나의 운명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작가"라는 이름을 얼마나 오랜 시간 그리워하고 동경해왔던가. 선셋이란 이름으로 첫 아트워크 전시를 하던 날, "작가님"이라고 불리던 내가 너무나도 좋았었다. 작가, 선셋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첫 순간이었다. 그러나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안락함에 젖어버리는 바람에 그 다짐을 애써 모른 척하고 긴 시간을 살았었다. 감사하게도 그 다짐은 죽지도 않고 살아서 다시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리게 해 주었다. 조금 다른 결의 "작가"이긴 하지만 다시 갖게 된 그 이름을 나는 무척이나 감격스러워했었다.


21년 12월 13일 기억하자. 거짓말처럼, 운명처럼 사랑하는 제주에서 사랑하는 제주에 대한 글로 "작가"칭호를 새로이 얻 그날을. 정말이지 선물 같았던 그 해 마지막 제를.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고, 발행한 글은 고작 7개. 이 글이 여덟 번째 글이 되겠다. 브런치에 멍석도 깔았겠다, 22년은 정말이지 선셋으로 열심히 살아보겠노라 장담하며 왼쪽 팔에는 타투도 했다. 아이고. 인간아. 그런데 7개가 뭐니!


 그러니까 이 글은 반성문이다. 작가라고 할 만한 작가가 되지 못한 사실에 대한 반성. 나 자신, 부디 21년 12월 성실하게 기억하길 바라며 그때의 제주에서 썼던 글을 되새김질한다.




21년 12월. 가을과 함께 내게 왔었던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했던 것들을 제주의 에매랄드 바다에 내어주고, 안온하고 따뜻한 것들로 나를 다시 덥혀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골목, 덩그러니 있는 버스정류장, 까만 돌, 빨간 동백, 맑은 하늘, 노란 귤, 나에게만 쏟아지는 햇살, 몸국, 낯설고 다정한 사람들, 유의미한 이야기, 동경, 계획된 우연, 밤 같은 아침. 그런 것들이 서서히, 조용히, 가득히 나를 덥혔다.


동쪽에서 만난 낯설고 다정한 사람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각자의 가슴에는 저마다의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아이는 우리의 삶이 순탄한 날에는 고요히 잠들어 있다가 힘에 부치고 괴로운 날에는 반드시 깨어나서 크게 울며 소리를 지른다. 나를 좀 돌보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 아이는 우리의 돌봄 없이는 절대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를 마주하는 순간 스스로가 무너질 것을 알기에 그 아이를 모른 채 하는 것을 택하는 일이 잦다. 가슴에서 아이가 내지르는 소리가 들릴 때에는 그 아이를 마주하지 않고는 안될 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를 마주했을 때, 스스로가 무너지고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지라도 그 아이를 똑바로 마주하고 돌봐야 한다. 정신없는 삶 속에서도 나의 가슴에 사는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영원히 늙지 않은 채로 우리를 생생히 살아있게 할 가슴속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는 낯설고 다정한 몇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우리는 함께 각자의 아이의 안부를 묻고, 토닥이고, 응원하며 밤을 맞았다. 모두를 따뜻하게 덥힌 시간이었다. 


 일상을 동동대며 살다가 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지쳐버리는 바람에 그저 무기력하고 조용히 훌쩍이던 내 가슴에 사는 아이는 그 밤의 온기로 랜만에 곤히 잠들었다. 그 잠은 참으로 감사한 12월의 선물이었다. 내 안의 아이 편안히 재우고나니 그제야 제주가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서글프지도 쓸쓸하지도 않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며칠을 제주에 더 있었다. 제주에서의 며칠 새, 나의 아이는 새근새근 곤 잠에 들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해도 달도 없는 밤 같은 아침 시간에 안겨있던 동네에서 나왔다. 나는 제주의 온기로 든든하게 덥혀진 덕에 차가운 바람에도 많이 춥지는 않았다. 다시 닥쳐올 찬 겨울에도 지지 않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용감해진 마음으로 불빛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덜그럭 소리를 내는 가방과 나뿐인 까만 길이었다. 그 길이 무섭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나를 덥혀준 것들을 놓고 가는 것이 아쉽고 아쉬워서. 동네 밖에 덩그러니 있는 버스정류장에 다 와서도 나는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나를 덥혀준 것들을 조금이라도 눈에 더 담아 가려고. 나 없이도 여전할 풍경이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게 따뜻해진 나를 잃어갈 때쯤 다시 와도 여전할 풍경. 그 풍경에서의 숨을 온몸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뜨겁고 차가운 일상이 시끄럽게 굴어도 아이는 한 동안은 고요히 잠들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위대한 유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