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중고사이트에서 두권을 구해 둘이 나눠가진 한강의 수필집이 드디어 나에게 왔다.
기대했던 것과 일치하는 건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한강의 글은, 너무 슬퍼서 나와는 거리를 좀 두고 싶다. 한강의 글을 읽어도 괜찮은 내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해서, 단편 중 두 개는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쉰을 바라보는 중견작가의 만 스물여덟 날들의 일기를 그와 같은 스물여덟 해에 읽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기차의 같은 쿠션에 자리한 중년 부부, 옆자리에 앉은 아내와 앞에 앉은 남편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이 외국인에 놀랄까 고개를 숙였다. 안경알에 방울방울 눈물들이 맺혔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향후 십오년 후 어떻게 되었을까 계속 진행하고 있을까. 또한 팔레스타인, 베트남, 미얀마, 터키, 브라질, 몰도바의 이 작가들은 어떤 걸 썼을까. 그들이 한강이 맨부터상을 받았을 때 해왔을 인사들도 궁금해졌다.
몇 대목 옮겨 적어본다.
그 전날 밤 나는 그들의 식탁에서 늦도록 긴 이야기를 했다. 세 명의 아시아인들이 비록 짧았지만 미국에서 경험한 삶의 방식들에 대해, 모국어에 대해, 뿌리라는 것에 대해, 글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작가야. 작가라는 건 어떤 일에든 하나의 입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귀가 찢도록 바람이 차던 날 아침, 하이는 명랑하게 동료작가들에게 말을 건넸다.
왜, 영화 같은 데 보면 사람들이 춥다면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깃을 세우고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걷잖아요. 그게 뭔지 궁금했거든요. 왠지 멋있어보이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나를 스위트 강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나에게 새 같다고 했다. 얼굴도,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새 같아 ..
안 그래도 넌 요즘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바람이 이렇게 불어대니 말이야.
아예타가 웃으며 말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평원의 바람, 그리고 사라진다는 것.. 영원히 사라지는 여자.
그날 밤 나는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바람이라는 제목의 아주 짧은 소설을 썼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생생하게 나는 깨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쏟아낸 내 눈물의 원인은 아래와 같다.
.. 그때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모두 울고 있었던 것이다.
푸근하고 말없는 인상을 한 재환 씨 아버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어머님은 손수건으로 뺨을 훔치고 있었다. 전날부터 여장부답게 결혼준비를 호령하던 큰누나의 눈은 새빨갰고, 작은누나도, 급기야 베스트맨으로 내 앞에 마주선 재환 씨 친구도 눈물을 흘렸다. 그 기쁨의 눈물들보다 더욱 절실하게 미란이의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멋모르는 아이들까지 찔끔찔끔 제 부모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낯선 외국인들, 비디오 촬영기사까지 덩달아 숙연해진 얼굴이었다.
코를 실룩거리던 재환 씨의 눈에서, 부케를 꼭 움켜쥔 미란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함께 떨어져 단상 아래로 흘렀다. 가족들의 눈물이 거기서 한데 섞여 차올랐다. 콸콸콸 내 발목까지, 무릎까지 넘쳐오르더니, 허벅지, 가슴까지 일렁였다.
그 다음단락이 명관이니 사서 보시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