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고난과 시련, 역경을 이겨내고 항상 행복하게 살아간다. 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 비를 가득 머금고 있는 먹구름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이럴 수가.
하룻밤 사이에 꼬박꼬박 먹고 있던 약이 먹기 싫을 정도로 울적했다. 마치 내가 겨우 이 작은 알 약들로 인해 조종되고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쏟아졌다. 또 알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돌며 친구들을 만났지만 더 이상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매일 감던 머리카락을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씩 감았다. 화장도, 향수도 뿌리지 않았고, 인터넷 쇼핑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며, 옷은 다시 무채색으로 바뀌고 내 얼굴에도 어두운 그늘이 지면서 입을 닫아버렸다. 다시 나만의 동굴을 파고 들어간 것이다.
한동안 폐인 아닌 폐인으로 살다가 또다시 화장하고 화사한 옷을 고르고 향수를 뿌리고 외출을 해서 실컷 웃고 떠들고 잘 지내다가 울적한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그냥 매 순간순간이 내가 아닌 나였다.
나는 대체 언제 나아지며,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지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물었다. 평생 먹을 것만 같은 불안함만 가득 안고 병원 밖으로 터덜터덜 힘없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또 이 조그마한 알 약들에게 내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하는 사실에, 그래도 믿을 건 몇 알 안 되는 약뿐이라는 사실에, 절망적이었다.
집에서 유독 엄마에게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냈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당황스러운 만도 할 텐데, 딸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오늘 친구랑 뭘 했는지 떠들더니, 하루아침에 입을 닫고 말을 안 하고, 또 몇 시간 뒤에는 “오늘 저녁은 내가 쏠게~”라고 하질 않나, 또 몇 시간 뒤에는 짜증을 있는 대로 다 냈다. 정말 또라이가 따로 없다.
정말 사소한 것에 신경이 예민했다. 누군가가 음식을 씹는 소리와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볼펜 딸깍거리는 소리도 거슬렸고, 자동차 경적이며 버스가 출발하는 소리, 거실에서 들리는 티비소리도 너무나 거슬렸다. 누군가 세상 모든 소리의 볼륨을 올려놓은 건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가끔,
잠시 동안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시 동안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콸콸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처럼 또 눈물을 쏟아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내 몸 안에 두 명이 살고 있다고 믿는 게 편할 정도였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세우고 행동하더니, 다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감은 자신감대로 떨어지고 일하는 것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하기 싫어졌으며, 두 손 두 발 다 걷고 나서던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더 나가서 ‘여기서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나의 약점을 알게 됐으니까 나를 얕볼 거야.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슬퍼해.’ 등 피해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조만간 환청도 들릴 기세였다.
이 정도가 되니 내가 정신병자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게 되기까지 부정하고 부정했지만 인정하게 된 날이 왔다. 나는 정신병자가 확실하다고.
어떻게 사람이 하회탈처럼 웃더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엉엉 울고 있냐고. 대체 어떤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간절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어졌다. 잔잔한 호수 같은 기분으로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증일 때도 아니고, 우울증일 때도 아닌, 그냥 나 자체로 살아가고 싶었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