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때 타지 않은 새하얀 구름에 올라타 둥실둥실 떠다녔다. 일주일 중 7일을 친구들을 만나고 다녔다. 쉬는 날에는 낮에 나가서 밤에 집을 들어왔고 심지어 낮에 함께 있던 친구와 밤에 함께 있던 친구가 다를 때도 있었으며, 일하는 날에도 퇴근하고 늦게까지 놀고 귀가를 했다. 알 수 없는 힘이 지구 두 바퀴는 돌 수 있을 만큼 남아났다.
잠을 못 잤다. 아니 안 잤다. 하루를 꼬박 자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다. 밤 근무를 하러 가기 전에 잠을 한숨도 안 자고 출근한 날도 여러 날이었다. 집에서 끊임없이 꼼지락거렸는데, 갑자기 바르지도 않던 매니큐어를 꺼내서 발톱에 어떻게 칠할지 생각도 안 하고 눈에 보이는 색으로 칠해버리고, 파스텔 오일로 그리던 그림도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쓱쓱 그려냈다. 인별그램에 관심에 목매는 사람처럼 사진들을 올려대고, 상대에게 주지도 못할 편지들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 인터넷 쇼핑도 미친 사람처럼 해댔다. 그렇게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나는 무진장 바빴다.
당장 이루지도 못할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루는 카페 아르바이트도 안 해봤으면서 카페 사장이 되는 계획을 온종일 세우고, 또 하루는 간호직 공무원에 관심을 가지고 하마터면 100만 원이 훨씬 넘는 인터넷 강의도 신청할 뻔했다. 그동안 직접 찍은 사진들을 엽서로 만들어서 판매해볼까도 생각했고, 막연하게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하며 글을 쓰고, 오일파스텔로 그림 그리는 거로 유튜브를 시작해 볼까도 생각했다. 많은 것들을 계획하면서 내가 마치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마구마구 솟구쳤고,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나 싶을 정도로 생각들이 통통 튀어 다녔다.
기분이 밝아지는 것만큼 내 옷 색깔들도 밝아졌다. 매일 무채색 계열의 남색, 검은색, 회색만 입다가 어느 시점인지 갑자기 노란색, 연두색, 하늘색 옷들에 손이 가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 옷을 사서 입기 시작했다. 밝은 옷이 나를 웃게 한 것인지, 웃어서 밝아 보이는지 얼굴도 밝아져 보였다.
웃는 얼굴에 뭔가 부족해 보여서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고, 화장기 없이 다니던 얼굴에 뭐라도 하나 더 바르고, 진한 향수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당장 쓰지도 않을 화장품도 남들이 좋다는 건 다 사서 쟁겨두었다. 이런 내 모습이 보기 좋아 사진을 찍어 인별그램에 올리며 ‘내가 웃는 모습이 이렇게 보기 좋았나?, 내 피부가 이렇게 좋아 보였나?, 내 코가 이렇게 오똑했나?’라는 자기애를 가지는 시간도 더러 있었다.
돈을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평소 소비습관은 내게 만 원짜리 한 장 쓰는 것도 아까워하고,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사게 된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것저것 따져서 구매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분 없이 옷이며 신발, 가방, 옷, 액세서리, 필기구, 책 등 사고 싶은 것은 일절 생각 없이 바로바로 구매해버렸다.
현관문 앞에 먼지 쌓일 일 없이 택배 박스들이 쌓여갔고, 내 방에서는 택배 박스 뜯는 소리와 비닐 뜯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기분은 온종일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다녔다. 완벽한 조증 상태였다.
조증은 일할 때도 비행기를 태워 세계 일주도 보내줬다.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기 싫어할 만한 일들을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섰고,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만들어서 일하고, 무슨 일을 해도 ‘역시 나는 간호사가 체질이야’라며 자존감은 물론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도 흘러넘쳤다.
평소보다 월등히 말이 많아져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떠다닐 거다’라는 말의 당사자가 될 정도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친구들은 내가 정말 좋아졌다며 다들 기뻐했다. 나보다 기뻐하니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에, 춤도 췄다.
울적해 하던 지난날의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삶이었다.
제발 이렇게 평생 살아갔으면 하고 하루하루를 정말 만족하고 감사히 살았다. 울적함을 완전히 따돌리고 이긴 기분에 더 날뛰었다.
내가 신규 간호사 시절 때, 한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할 일이 아무리 많고,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지나가서 퇴근은 꼭 한다고.
맞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큰 위로가 되는지 몰랐다.
소나기가 오고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잿빛 먹구름이 걷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