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병동 전체에 따뜻한 햇볕이 스며들어 오는 점심시간이었다. 환자들은 점심식사를 끝마치고 빈 식판을 들고 복도에 있는 밥 차로 하나둘씩 모일 때쯤이었다. 윗 병동 선생님이 다급히 병동 스크린도어를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Suction bottle(흡인 작용에 의해서 상기도 내의 분비물, 소화관내 및 체강 내의 혈액, 삼출액, 가스등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흡인 장치) 좀 주세요!!!” 마침 씻어 놓은 bottle이 있어 바로 드렸다. 윗 병동 선생님이 받아 들고 가시고는, 같이 일하는 선생님께서 “혹시 모르니까 Suction line(흡인 장치와 환자의 체내로 들어가는 카테터를 연결한 줄) 가져다줘 봐~” 나는 line을 들고 계단으로 냅다 뛰어 올라갔다.
항상 선생님 한 분은 있던 6층 간호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크린 도어를 열고 간호사실 앞에 서서 좌우를 살폈다. 오른쪽 복도는 조용했고 왼쪽 복도는 환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기계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저쪽이네.’ 소리가 나는 왼쪽 복도로 뛰어갔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서 제일 처음 목격한 것은 다인실에서 많은 간호사와 의사들 사이에서 intubation(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 내에 관을 삽입하는 것)을 하고, 가슴 압박(심폐소생술)을 할 때마다 파동이 가슴팍에서 팔을 타고 손까지 전달되고 있는 축 늘어진 거구의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출근길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그 이후로 처음 보는 심폐소생술이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숨이 ‘컥’하고 막히는 기분이었고,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순간은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놀란 것도 잠시, 들고 간 것을 전해 주려 가까이 다가가는 그 순간 간호사 선생님은 다른 물품을 찾았다.
“제가 가져올게요!!”
병실 문이랑 내가 제일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중환자실까지 미친 듯이 내려갔다. 그리곤 물품을 받아 들고 사냥개가 먹이를 포착하고 뛰어가는 것 마냥 계단을 올라갔다. 헐떡거리며 계단 두 칸씩 올라가고 있는 나를 누군가가 보았다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행히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고, 조만간 폐와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했다. 시간이 지나고 애플 워치로 확인해 보니 그 시간대에 내 맥박은 163회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축 늘어진 할머니의 머리맡에 서서 식도로 들어가야 했던 음식물들을 기도에서 빼내고 있었다. 기도삽관을 한 자리로 플라스틱으로 된 할머니의 숨구멍에 작은 호스를 넣어 음식물을 빼려 하기엔 내 손이 너무 떨고 있었다. 이미 장갑을 낀 것도 나였고, 음식물을 빼내려는 장치를 잡아 든 것도 나였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순간 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넷,.......” 진이었다. 진이는 내 동기다. 입사하고 서로가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힘든 날에도,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날에도, 일이 아닌 다른 이유로 기쁘고 슬픈 날에도 항상 같이 있었다. 인생 최대의 울적함을 느끼고 있을 때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시간을 내 나를 억지로 밖으로 불러내어 옆에 있어 줬다. 불러서 나가면 말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가만히 있었던 날이 있었고, 둘이서 엉엉 울었던 날도 있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런 진이가 내 앞에서 가슴 압박을 하고 있었다.
진이가 내 앞에서 가슴 압박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금세 안정을 찾았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낯선 병동에, 낯선 병실에서 낯선 간호사 선생님들과 있는 공간에서 동기는 그야말로 한 줄기의 빛이었다. 가슴 압박을 하는 진이의 목소리에 힘입어 떨리는 손에 힘을 가득 주어 할머니의 숨구멍으로 호스를 넣어 음식물을 빼내었다.
산소를 주입하고, 약물을 주입하고, 가슴 압박을 하고, 음식물을 빼내니 할머니의 활력징후(혈압, 체온, 맥박, 호흡수, 산소포화도 등 인간의 살아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징후, 소견)가 점차 정상에 가까운 수치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할머니는 초점 잃은 눈을 끔뻑거렸다.
상황이 종료되고 병동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주섬주섬 챙겨 인사를 하고, 원래 내가 일하고 있던 5병동으로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을 때 내 다리는 여전히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온 거지? 아무튼 할머니가 다시 살아나서 다행이야. 더 알려고 하지 말자.’
퇴근하기 전에 6층 수간호사 선생님이 고맙다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 오셨다. 나는 그날 점심을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내 힘으로는 넘볼 수 없는 산을 쳐다도 못 보다가 여럿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뛰어넘은 느낌이었다. 길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난 이후로 또 다른 트라우마를 만들기 싫어서 ‘나는 마음이 약하니까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할머니의 생사는 그만 궁금해하고, 생각하도록 하자 알겠지?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라고 소중한 내 마음을 마치 3살 먹은 아기를 어르고 달래듯이 조심스럽게 대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어쩌면 아무런 소식을 들은 것이 없으니, 병동에서 심폐소생술을 한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