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꽃밭이 그려진 직사각형 약 봉투 안에는 하얗고 길쭉하게 생긴 알약, 녹색의 사각형 알약, 하얗고 큰 동그란 알약, 분홍색의 길쭉하고 동그란 알약, 노란색의 동그란 알약.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그동안 내게 처방해준 약들이다. 각기 다른 색의 조그맣고 귀여운 약들이 초라한 나 대신 자신들의 존재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우울증약은 한 알, 수면제는 두 알로 시작했다. 나의 일주일을 함께 해 줄 소중한 존재였다. 사실 일주일 동안 약을 먹고 한두 시간씩 자던 잠은 서너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었지만, 수면의 질은 썩 좋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잘 수는 있었지만, 15분, 30분에 한 번씩은 꼭 잠에서 깨곤 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우울한 내 기분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두 번째로 병원에 방문했을 때는 처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나름 자신감이 붙었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일도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물어봤다. 잠은 그 전보다 한두 시간 더 자게 되었지만, 기분은 여전히 똑같다고 말했다. 아직 약을 일주일밖에 쓰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설사해서 한두 번 약을 먹으면 나아지는 것과는 달랐다. 약국에서 나왔을 때는 지난주와 같은 약에서 용량만 커진 약 봉투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 주째 약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밤 근무를 하는 나이트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인계를 듣는데, 인계를 듣기 전에 이상하게 목이 타서 물을 들이켜려고 물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은정아 손을 왜 그렇게 떨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져서 떨리는 게 느껴져 힘주어 물을 따르고 있었지만, 선생님이 보기에도 손을 떨고 있다는 게 보였나 보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나이트라서 긴장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인계를 얼마나 들었을까? 따뜻한 봄인데도 불구하고 내 몸이라고 말하기 싫을 정도로 추운 겨울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멈추고 싶어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달달달’ 떨리는 것이, 리모컨의 정지 버튼이 있다면 미친 듯이 누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온몸에 힘을 주어도 내 다리는 더 심하게 떨려 왔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섭고 불안해져 또 눈시울이 뜨거워져 누군가 ‘툭’ 치면 장마철 소나기 내리듯 눈물이 후드득하고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인계를 듣고 있던 선생님들이 이상함을 감지하시고는 안정제를 하나 먹이고, 같이 일하고 있던 친언니 같은 선생님과 손을 왜 그렇게 떨고 있냐 물어보시던 선생님이 내 양팔을 하나씩 잡아서 특실로 끌려가듯이 데려갔다.
그리곤 “은정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참지 마.”라는 말에 결국 내 눈물샘은 또 터져버렸다.
이튿날, 또다시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의사 선생님께 나이트 출근해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카페인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저녁 약을 먹고,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커피를 먹었던 간격이 짧았던 것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저녁 약은 먹었어야 했고, 또렷한 정신으로 일을 하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 그래서 좋아하던 커피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 내가 간호사실에서 우엉차를 마실까, 페퍼민트 차를 마실까 고민하고 있으면 선생님들은 커피 마시지 말라며, 커피 안 마실(?) 나를 말리곤 하셨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약만 먹고 집에서만 생활할 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사는 가족들조차도 보기 싫은 정말 나쁜 딸이자 언니였다. 영문을 모르는 친구들은 내게 만나자며 카카오톡을 보내고, 전화도 해댔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답장하지 않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그렇게 관종 마냥 업데이트해대던 인별그램도 더 이상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제일 오래된 친구가 한 명 있다. 이 친구는 윤정인데, 윤정이는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때부터 친구였다. 26살인 지금까지 18년을 단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어쩌면 비슷한 점이 많아서 지금까지 서로가 서로 배려해줘서 싸우지도 않고 잘 지내온 건지도 모른다.
윤정이랑은 맛있는 곳도 찾아서 가고, 카페도 가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내가 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알 수 없는 배달이 왔다. 윤정이와 내가 자주 가던 디저트 카페에서 온 배달이었다. 윤정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와 디저트를 배달시켜줬다. 입맛은 없었지만 울면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맛이었다. 내가 어쩌자고 소중한 친구들을 끊어냈을까.
내 상황을 대충 알던 윤정이는 그 후로도 내가 읽지도 않고, 답도 하지 않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제나 내 옆에 있겠다는 말. 빨리 보고 싶고, 만나서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자고,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 오늘 기분은 좀 어떻냐는 말. 오늘은 나이트 출근인데 잠은 많이 잤는지, 오늘도 파이팅 하라는 말. 다음 달엔 꼭 보자는 말. 내 한 달 근무표를 나보다 더 기다리고 쉬는 날 꼭 보고 싶다는 말. 시간이 참 안 가는데 빨리 간다는 말. 오늘 있었던 일들을 혼자서 이모티콘도 써가며 대답 없는 채팅창을 외롭게 채워 나갔을 윤정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약을 얼마나 먹었을까? 나는 울지 않았다. 한 일이 주 동안 단 한 번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무덤덤해졌다. 한동안 오로지 슬픔만 표현할 수 있던 나였는데 이제 나는 슬픔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그저 사람 자체가 점점 ‘멍~’해졌다.
집에 있을 때도, 출근해서 일을 할 때도 머릿속에서 먹구름이 끼고 안개가 끼고 별 이상한 것들이 돌아다니는 듯했다. 정말 ‘약에 취하면 이런 느낌일까?’ 이런 생각 자체도 못 했다. 그저 정신간호학 실습을 나갔을 때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던 우울증 환자만 생각났을 뿐이다. 마치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렇게 내 우울증 약은 바뀌게 되었다.
서너 시간 자던 잠을 15시간씩 자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오지도 않던 잠을 겨우겨우 재워두었더니,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나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니, 이럴 바엔 수면제를 안 먹고 차라리 밤을 새우는 것이 나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쉬는 날 전에 먹는 수면제는 좋았다. 가족 누군가가 나를 깨워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15시간을 쭉 자곤 했다. 출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종일 잔다고 하루 세끼를 다 거른 적도 많았다. 밥도 안 먹고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내가 이렇게나 많이 잤다고? 대박인데?’라고 뿌듯해했다. 그동안의 못 잤던 잠들을 한 번에 보상받는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 의사 선생님께 말하면 좋은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장 수면제 용량을 줄이자고 하셨다.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게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이고, 제일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