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도 우울할 수 있잖아?
황급히 전화를 끊고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혹여나 다른 사람이 오지는 않는지 두리번거리고 내가 갈 정신건강의학과는 몇 층인지 확인했다. 3층. 아직 진료 시간이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듯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3층 버튼을 누르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무심결에 보게 되었다. 여전히 우울한 눈매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애처롭게 보일 수 없다. ‘다 왔어 이제 접수하고 진료만 보면 끝이야. 잘하고 있어’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바로 앞에 또 자동문이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접수하는 곳까지 쭈뼛쭈뼛 걸어가서 말했다. “저기.. 조금 전에 전화드렸던...”
접수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나는 최대한 구석지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서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처럼 앉았다. 벽에 기대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퇴근하고 집 가던 길에 다시 돌아와서 1이라는 병원 앞까지 갔다가 2라는 병원에 와서 접수하고 기다리기까지는 학교 다닐 때 제출기한까지 미루고 미뤄두었던 과제를 한꺼번에 다 끝낸 기분이었다. 후련했다.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살짝 미소를 띤 표정과 사무적인 표정 그사이의 표정과 말투를 하고 나를 반겨 주었다. “어떤 일로 오시게 됐을까요?” 의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딱 말 한마디 들었을 뿐인데 나는 대답도 못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안경에 김이 서리더니 바보 같이 울기만 울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곤 한 마디 뱉었다.
“너무... 우울해요...” 병원에 오기 전에 준비하고 연습하던 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마디밖에 말하지 못하고 또 울었다. 준비한 말을 하고 싶은데 눈물이 계속 나서 우울하다는 말 말고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다 울고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꺼이꺼이 숨 넘어 갈듯이 두서없이 다 말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결과가 좋지 않았던 이후로 무기력하고 우울한 것, 잠이 오지 않고 헛것이 들리고, 식욕도 없고 체중도 감소했고, 자살 충동도 느낀다고 준비했던 말들을 다 내뱉었다.
내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컴퓨터의 키보드를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처럼 연신 두드리셨다. 그러더니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이라고 말씀하셨다.
‘나 우울증 맞네’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안다더니 우울증이 맞았다.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우울증이라는 말을 내 두 귀로 들으니 믿기 어려웠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랑하려고 살다 보니, 나 자신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늦게 방문한 내 탓인 것 같아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했다.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보시기에 대답을 하고 약물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내가 우울증약을 먹다니’
우울증약과 잠을 못 자는 탓에 수면제를 일주일 치 처방받아서 먹고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에 와야 했다.
눈물과 콧물 범벅인 휴짓조각을 꾸깃꾸깃 뭉쳐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 우울도 휴짓조각에 뭉쳐 버려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수납하고 자동문을 지나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이 풀린 걸까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흰 운동화를 신고 들어갔지만 그제야 내 눈에 갈색 실내화들이 보였다. 왜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을까?
1층 약국에서 약을 타고 ‘난 피부과 갔다가 약을 타고 나온 사람이야’라는 듯이 약국에서 나왔다. ‘이제 끝이다. 다 했다. 집에 가자!’ 그러곤 내가 무슨 약을 먹는지 인터넷에 검색해서 다시 보았다. 우울증에 먹는 약이 맞았다. 수면제는 처음 먹어보는데 내가 이런 약을 먹을 생각을 하니 두렵고 무서웠다. 집에 가서 내 방 어디에 숨겨두고 가족들 몰래 먹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어쨌든 모든 게 다 끝났기에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도저히 버스를 타고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쓰러지듯이 누웠다. 병원을 갔다 오면 끝날 줄 만 알았는데 또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몰려와 눈물이 되어 내 두 볼을 미끄럼틀 타듯 타고 흘렀다. 그날따라 서러움은 멈출 줄 몰랐고, 두 눈은 메마르지 않았다.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나는 죽고 싶어도 무서워서 죽지 못하는 겁쟁이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겁쟁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주변 지인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 ‘그럴 수 있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오로지 나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나 스스로가 준비되지 않아 고민하던 것도 있었지만, 병원 가는 것을 주변 사람들 시선이 부끄러워 병원 가는 것을 주저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병원 가기 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기에 그동안 부끄러워하던 나를 생각하면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학교에서 정신 간호학을 배울 때, 정신건강의학과랑 나랑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생전에 한번 가 볼 일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다녀왔다. 정신건강의학과와 관련 없다고 생각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진료를 보게 되었으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도 언제든지 우울이라는 감기가 아니라도 언제 마음이 아플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숨기기만 하면 곯아서 썩어 문드러질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더 일찍 갈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이,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자. 꼭.